담임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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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는 새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시를 쓴다는 것이 더구나 나를 뒤돌아본다는 것이 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나였다 다시는 세월에 대해 말하지 말자 내 가슴에 피를 묻히고 날아간 새에 대해 나는 꿈꾸어선 안 될 것들을 꿈꾸고 있었다 죽을 때까지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 나는 두려웠다 다시는 묻지 말자 내 마음을 지나 손짓하며 사라진 그것들을 저 세월들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고개를 꺾고 뒤돌아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다” -류시화/ “새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고개를 꺾고 뒤돌아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다” 라는 시구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과거는 종종 우리에게 추억이라는 좋은 선물을 남겨줍니다. 아름다운 추억은 현재의 나와 미래를 연결시켜주는 발판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실수와 실패 그리고 부끄러운 과거의 순간만을 끊임없이 떠올린다면, 과거는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나에게 자책과 절망만 가져다 주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 걸림돌 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과거의 영광에만 취해 산다면 현재의 불만족한 삶에게 약간의 위로는 줄지는 모르지만, 현재를 비판적 정신으로 직시하고 이를 발판으로 삼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으로 재 조정해 나가는 미래의 삶을 살지 못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그렇게 바라는 미래는 과거에

크리스마스의 의미

크리스마스때가 되면 등장하는 산타클로스가 세인트 니콜라스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니콜라스는 서기 280년쯤 지금은 터키인 소아시아 남서쪽 지방에서 태어났습니다. 독실한 기독교도였던 부모는 그가 어릴 때 많은 재산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이 모든 유산을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에게 나눠줬습니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많은 자선을 베풀어 어린이들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졌습니다. 훗날 니콜라스의 이 이야기가 네덜란드인 정착민들에 의해 당시 신대륙인 미국에 전해졌는데, Sint Nikolaas가 영어식으로 발음되면서 산타클로스가 됐다고합니다. 산타를 퉁퉁한 배를 가진 쾌활한 노인요정으로 묘사한 것은 1823년 신학자 클레멘트 무어가 쓴 시 '성 니콜라스의 방문'이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이 모습을 그림으로 나타낸 사람은 1863년 한 주간지에 삽화를 그렸던 토마스 내스트라는 만화가였고, 1890년쯤에는 구세군이 빨간 옷과 모자를 쓴 산타 복장으로 자선활동을 벌이면서 일반화됐다고 합니다.1931년 코카콜라가 광고에 산타를 이용하면서 빨간 모자에 빨간 옷을 입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의 핵심은 산타나 크리스마스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크리스마스(Christmas)는 'Christ'(그리스도)와 '-mas'(예배)의 합성어입니다. mas는 가톨릭에서 말하는 미사(Mass)를

그리스도인의 죽음과 쉼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14:13) 성경은 성도가 이 땅에서 믿음을 지키며 살다가 설혹 죽임을 당하더라도 그 죽음은 복된 것이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성도의 죽음이라는 말은 “이 땅에서의 수고를 끝내고 이제 하나님께로 와서 쉬라”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열왕기상 19:4을 보면 아합 왕과 이세벨 왕후로 인해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바알 신을 여전히 섬기고 있을 때 엘리야 선지자가 가 너무 힘들어 이제 죽기를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로뎀 나무 아래에서 쉼을 하락하셨습니다. 그리고 선지자 사역을 엘리사에게 위임 하게 하시고 엘리야를 불병거에 태워 하늘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래, 그동안 수고했다. 이제는 내게와서 쉬라”고 하신 것입니다. 포루투갈에 파송된 영국인 선교사 에릭 베이커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50년동안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 유럽의 상황이 위태로워지자, 주위에서 에릭에게 안전을 위해 아내와 여덞 명의 자녀를 영국으로 피난 보내는 것이 좋겠다는 충고를 하였습니다. 그의 여동생과 그녀의 세 자녀도 같은

종말의 때와 믿음

“일곱 우레가 말을 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곧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레가 말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10:3). 하나님을 반영하고 대변하고 있는 힘쎈 천사가 사자가 부르짖는 것 같은 큰 소리로 부르짖자 일곱 우뢰 소리가 나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데 요한이 그 말을 기록하려고 하니 그 말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종말은 이제 곧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면서도 그 구체적인 날짜와 시간은 인봉해 놓고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그 대신 믿음으로 준비하고 깨어 있으라고 말씀합니다. 1990년 한국의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끼친 폐해를 생각해보십시오. 종말의 때가 언제라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 그렇지 않아도 일하기 힘들고 귀찮고 공부하기 싫고 그리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래서 모든 것을 다 그만두고 다 팔아 기도원에 가서 종말을 기다렸습니다. 종말의 때와 시간을 알았다고 생각하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늘나라로 향해 가는데 필요한 지도입니다. 삶의 방향에 대해서는 말해주지만 그러나 모든 삶의 문제를 세부사항까지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 삶이 언제 끝이 나는지를 알고 있다면 그 사람의 삶은 사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모든 초점이 죽음에 맞추어져 있을 것입니다

믿음의 이정표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니” (요한계시록 2:10). 이 말씀에서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을 사람들은 종종 “죽을힘을 다해 열심히 봉사하라”는 뜻으로 잘못 이해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충성하라”는 말은 “신실하라”는 의미의 말씀으로 “죽음에 이른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놓지 말고 꼭 붙들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천국 가는 길의 중도에서 죽음에 이르는 시험이 있을지라도 믿음을 배반하거나 떠나지 말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완성 가운데 들어가라는 격려의 말씀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성도들에게 죽음까지 이르는 시험을 허락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 땅에서의 삶과 생명을 가볍게 여기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이 땅의 생명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 삶이 이 땅으로만 끝이 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죽음에 이르는 고난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 땅에서 때때로 고난과 심지어 죽음에 이르는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이 세상의 삶이 다가 아니라 죽음 이후의 영원한 삶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죽음에 이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계속 붙들고 나아간다면 결국에는 우리 자신에게 크나큰 영적인 유익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를 따라오는 믿음의 후배들이나, 우리 자녀들에게 믿음의 선한 발자취를 남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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