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Pastor's Columm

Recent Posts
Archive

환경이 아닌 믿음으로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창세기 18:14). 여호와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대동하고 아브라함을 방문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제 약속한 자녀에 대한 약속을 다시 확인해 주십니다. 그래서 내년에 사라가 아이를 가질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9, 10절). 그러나 사라는 자신의 나이와 몸으로 보나 아브라함의 나이와 몸으로 보나 그것은 가능치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1, 12절). 그래서 속으로 웃었습니다 (12절). 얼마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러한 말씀을 하셨을 때 아브라함도 처음에는 믿지 못하여 웃었습니다 (창17:17). 그리고 이제는 사라도 웃습니다 (12절). 다음해에 아들을 낳았을 때 그 이름을 이삭이라고 했습니다. “웃음” 이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처음에 하나님께 아들에 대한 말씀을 하셨을 때 믿기지 않는 비웃음의 웃음을 웃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아이를 백세에 아들을 가지자 기쁨의 웃음을 웃었습니다. 처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때 75세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24년이 지난후 비로서 다음해에 그 약속한 아들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아들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시점이 중요합니다. 그 시점은 신체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을 때 였습니다. 인간적으로 가능성을 가지고 어떠한 시도도 전

영적 교만을 꺽기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창세기 11:4) 노아홍수 이후 인간들이 “동방으로 옮겨갔습니다(1절). 동생을 죽인 가인도 여호와를 떠나 동쪽으로 갔습니다 (창 4:16). 이렇게 성경에서 동쪽으로 옮겨갔다는 말은 종종 여호와를 떠나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이제 시날평지에 머물기로 합니다 (2절). 이들은 여기에 머물며 “성과 대” 즉, 성과 탑(tower)을 쌓기로 합니다. 그렇게 하는 까닭은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 (교만), 흩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4절). 당시 사람들은 벽돌과 아스팔트를 사용해서 성을 짖고 하늘까지 닿게 할 수 있는 아주 높은 타워를 건설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과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능력과 기술을 이용하여 하나님 없이 자신 스스로 자신의 성을 건축하고 하늘에까지 이르는 탑을 쌓아서 자신들이 마치 하나님이 되는 양 교만하고 방자했습니다. 바벨탑을 쌓으려는 노력은 아마도 다음의 홍수로 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보호의식이 작동 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전에 홍수로 모든 사람들이 죽었지만 자신들의 기술로 바벨탑을 쌓으므로 미래의 홍수 때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즉 자신들이 하는 무엇에 대해 하나님께서 벌하신다면 자신 스스로 힘과 능력을 이용해서 그

기억하고 기억했습니다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바람으로 땅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였고…” (창세기 8:1) 홍수가 온 땅에 40일동안 일어났고 또한 홍수로 인한 물이 온 땅에 150일동안 가득함으로 노아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동물들은 방주 밖으로 나갈 수 없었고 방주 안에서 계속 물이 빠지기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헤었습니다. 홍수가 시작되고 땅이 말라서 밖으로 나가기까지12개월 11일 동안 하나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으셨고 자취조차 거의 감추셨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노아를 기억했습니다. 1절의 “권념하사” 말은 “기억하다”는 말입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의 의미는 그냥 기억만 하고 생각만 했다는 말이 아니라 이전에 한 약속을 기억하여 행동에까지 옮기기 위해 기억했다는 말입니다. 또한 그때 노아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기억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동식물들을 만드시고 아담에게 사명을 주셨는데 “모든 움직이는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는 사명입니다 (창1:28/ 2:15). 노아는 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잊지 아니했습니다. 그래서 방주가 아라랏 산에 멈추자 자신과 자신이 보호하고 있는 둥물들이 땅에서 살수 있는가를 알아보려고 까마귀와 비둘기를 날려 보냈던 것입니다. 당시 방주는 아라랏 산에 머물렀기 때문에 노아가 자신의 가족들만 아라랏 산 주변에 살 작정이었다면 까마귀와 비둘기를 날려보낼 필

하나님과 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창세기 1:1,2) 창세기는 하나님은 온세상을 창조하신 분 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없는 데서부터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1절의 “천지”는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모든 영적인 존재를 다 포함합니다 (느헤미아 9:6참조). 그러므로 본문은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만드셨고 천사들을 포함한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영적인 것들과 눈에 보이는 모든것들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땅는 혼돈하고 공허했습니다” 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혼돈하고 공허하다”라는 말은 “형체가 갗추어 져 있지 않아서 아무도 살수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천지를 창조한 직후, 땅은 아직 아무도 살수 있는 상태가 되지 않아서 아무도 살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3절부터 그 땅을 사람이 살수 있는 곳으로 하나님은 만드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생물들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드실 때 “하나님의 신은 수면을 운행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신은 성령님을 말하는데 “운행”이라는 말은 신명기 32:11의 “독수리가 새끼가 있는 둥지 위를 너풀거리며 날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같은 히브리어 동사를 사용). 즉 독수리가 새끼를 보호하며 그들의 둥지를 마련하기 위해 너풀거리며 그 위에 날고 있는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Follow Us
  • Facebook Basic Square
  • Twitter Basic Square
  • Google+ Basic Squ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