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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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의 의미와 결과

오늘 큐티 말씀은 마가복음 15:33-47까지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오전 저는 33절에서 37절 까지에서 말씀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의 의미와 그 결과에 대해 초점을 맞추어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1.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의 의미 먼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운명하실 때 온 땅이 어두움으로 가득 찼다고 말씀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합니다 (아모스 8:9).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운명하시기 전 “엘리엘리 사박다니” 라고 외쳤습니다. 이 말은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하던 아람어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뜻입니다 (34절).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지금 심판하고 계시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심판의 저주를 지금 다 받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구절은 시편 22편을 인용한 것인데 이 시편을 찬찬이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많은 은혜가 될 것입니다. 본문에서 말씀하는 것은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하나님의 버리심(하나님과의 단절)을 경험하셨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우리 죄로 인한 하나님의 영원한 단절을 경험해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그 죄에 대한 심판을 우리 대신 다 받으셨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3:13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삽시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밖혀 죽으신 금요일입니다. 이 날,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좀더 경건한 하루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오늘 큐티 말씀은 마가복음 15:16-32 까지 말씀인데 예수님의 십자가에 초점을 맞추어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제사장과 종교 지도자들에 예수님을 당시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로마 총독인 빌라도에게 넘겨주었고 백성의 요구대로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합니다. 1.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을 모욕하고 조롱했습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을 “브라이도리온” 이라는 뜰 안으로 끌고 갔습니다. “브라이도리온” 이라는 것은 본부대라는 뜻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처형하기 전에 예수님에게 장난질하며 예수님을 모욕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할 때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었을 때 “그렇다 ”고 대답한 것을 기억하고 예수님을 가짜왕으로 조롱하기 위해 왕 같이 꾸몄습니다. 당시 왕들은 신분의 표시로 자주색 옷을 입었습니다. 그래서 군병들은 자기들이 걸치는 붉은색이 많이 들어간 자주색 망토를 예수님에게 입혔습니다. 그리고 왕들은 황금 잎으로 정교하게 장식된 왕관을 쓰는데 그것을 흉내내서 구부리기 좋고 가시가 돋아나 있는 “나부크”라는 식물줄기를 이용하여 가시 면류관을 만들어 예수님의 머리에 눌러 씌웠습니다. 이로 인해 가시에 찔린 이마와 머리로부터 피가 흘러나왔습니다. 이렇게 가짜왕의 모습을 만들어 놓고 군병들은 킬킬

인간의 악한 계획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섭리

오늘 큐티 말씀은 마가복음 15:1-15 말씀입니다. 불법으로 예수님을 빨리 사형에 처하려고 하는 대제사장과 종교지도자들과 유대 총독인 빌라도가 자신의 정치생명의 문제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주는 악한 계획을 오히려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신 사건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주어 처형 하게한 것은 “새벽”에 일어났다고 말씀합니다 (1절). 이들은 예수님의 처형을 매우 서두르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목요일에서 금요일로 넘어가는 밤에 이들은 예수님을 기습적으로 체포했고 이제 금요일 새벽이 밝아왔습니다. 토요일은 안식일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처형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서두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 자신들이 율법(토라) 다음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던 “미쉬나”에 의하면 중요한 재판은 안식일이나 유월절과 같은 대 축제일 전날에 열리지 않도록 해야만 했고 그 재판은 성전 안 돌로 잘라 만든 홀에서 열어야만 했지만, 자신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종교적인 규정까지 어기면서 예수님의 재판을 속전 속결로 진행하려고 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가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최고 법 집행기관인 데 제사장들과 종교지도자들이 모인 산헤드린 공회에서는 사형 판결은 할 수 있지만 사형 집행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예수님을 신성모독 죄로 판결하여 로마 총

은혜에 빛진 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오늘 큐티 말씀은 마가복음 14:53-72 까지 말씀입니다. 저는 오늘 66절부터 72절까지 말씀에 초점을 맞추어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불과 몇 시간전에 재자들이 다 예수님을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은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고 베드로는 다른 사람들은 다 주를 버릴지라도 자신은 죽을지 언정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장담했습니다 (14: 27-31) 베드로는 완전히 도망간 다른 제자들 같지 않게 군중들 틈에 썩여 멀찍이서 예수님이 끌려가는 곳까지 따라 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의 집 안뜰까지 끌려가 심문을 받고 있었을 때 베드로는 멀찍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예수님을 심문을 지켜보면서 불을 쬐고 있었고 배드로도 함께 불을 쬐고 있었습니다. 그때 대 제사장의 여종 하나가 베드로에게 “당신도 예수와 함께 있지 않았느냐?”고 말했을 때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 사람들을 피해 앞뜰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거기서도 다른 한 종이 베드로를 보고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이자도 예수와 한패라고 말하자 아니라고 부인했습니다. 조금 있다가 “너는 갈릴리 사람이고 저 예수와 같은 패가 아니냐?”고 물었을 때 저주하고 맹세하며 “나는 너희가 말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지 못한다”고 말하며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했고

당당하게 믿음의 삶을 삽시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마가복음 14:42) 우리가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비굴하지 않고 환경에 짓눌리지 않고 당당하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믿음으로 걸어갈 수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큐티 본문 말씀 마가복음 14:43-51을 보면, 예수님께서 주어진 고난과 십자가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는 심히 고민하여 마음이 죽을 상태만큼 힘들 때(34절) 간절히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36절).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우리 죄를 대신해 죽는 것임을 다시한번 확인 한 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42절). 예수님께서는 제자인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 것임을 알았습니다. 가룟유다가 종교지도자들이 보낸 사람들을 이끌고 자신을 잡으러 올 것을 알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잡으러 함께 가는 무리들에게 자신이 입을 맞추는 이가 바로 예수님이니 그때 그를 잡으라고 미리 이야기해 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길로 피해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잡으러 온 자들을 향해 당당하게 걸어 갑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과 입을 맞추고 칼과 몽둥이로 중무장한 무리들은 예수님을 잡으려할 때 곁에 있던 제자 한 명이었던 베드로가 (요한복음 18:8) 사람들이 예수

시험과 시련을 이겨나가기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마가복음 14:38). 예수님께서는 시험의 때가 지신에게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고 제자들에게도 시험이 곧 닥칠 것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시험의 때란… 이제 군병들에게 잡혀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고 제자들에게 여러번 이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심히 놀라시며 슬퍼” 했다고 33절에 말씀합니다. 그리고 34절을 보면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되었으니…” 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이리 나약한 말씀을 하십니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육신의 죽음의 두려움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모든 인류의 죄를 다 혼자서 짊어지고 그 죄에 대한 형벌을 예수님 홀로 받게 됩니다. 죄를 범한 모든 인류에게 내릴 하나님의 저주가 온전히 예수님에게 다 쏟아 붇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죄에 대한 형벌이 얼마나 큰지 예수님 마저 두려워할 정도였습니다! 이 시험과 시련의 때에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기도하십니다. 겟세마네의 뜻은 “기름짜는 틀” 이라는 뜻입니다. 아마도 올리브 나무가 많아 올리브 기름을 거기서 짜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겟세마네라는 이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시는 것을 연상시킵니다. 시험과 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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