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을 넘어서기)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고린도 전서 4:16) 사도바울은 아비의 심정으로 교만을 버리고 나를 본받으라고 그렇게 간절히 권면합니다. 교만은 무엇이 문제입니까? 교만은 악중에서 가장 큰 악이요 죄중에서도 가장 큰 죄악이기때문입니다. C.S. 루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독교 스승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가장 핵심적인 악, 가장 궁극적인 악은 교만이다”. 거짓, 성적인 타락, 탐욕, 술취함 등은 교만에 비하면 경미한 것들이라고 말합니다. 왜 교만이 가장 큰 악입니까? 사탄은 원래 천사였다가 교만으로 인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대적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교만은 사단의 기원이 되었고 악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교만은 온갖 악으로 이어지게됩니다. 교만은 본성적으로 경쟁적이라고 말합니다. 단순히 무언가를 가지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옆 사람보다 더 가져야 만족합니다. 그래서 교만은
Jun 14
(이야기를 통한 영적 삶의 전수)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사 복을 주시며/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창세기 48:3,4) 요셉이 병들어 임종이 가까와 오자 요셉은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함께 요셉을 방문합니다. (1절). 이때 야곱이 이들을 맞아 요셉과 두 손자들에게 한 말이 오늘 말씀입니다 (2절). 야곱을 방문온 요셉와 두 손자들에게 야곱은 자신의 가족의 영적인 뿌리와, 영적인 약속, 영적인 기업, 그리고 영적인 경험들을 이야기해줍니다. 야곱은 먼저 하나님께서 가나안땅 루수(벹엘)에서 어떻게 나타나셔서 자신에게 언약의 약속을 주셨는가에 대해서 말하고 그리고 그 약속 가운데 포함된 기업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3, 4절). 여기서 하나님께서 자손과 땅의 약속을 한 것에 대해 되새기며 요셉과 두
May 31
(꿈과 야망)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창세기 42:9) 야굽땅과 팔에스타인 지방에 극심한 흉년이 찿아왔습니다. 그 흉년은 애굽 주변의 국가에도 미쳤고 요셉의 부모들이 사는 곳인 가나안까지 미쳤습니다.그래서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애굽에 양식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들에게 양식을 사러 10명의 아들들을 보넵니다 (1-3,5절). 그때 요셉은 애굽 총리로서 모든 땅의 백성들에게 곡식을 팔았습니다 (6절 상). 그리고 요셉의 형들도 곡식을 사러와서 요셉 앞에 엎드려 절했습니다 (6절 하). 총리가 일일이 곡식 사러온 사람들을 다 맞이하여 팔지는 않았을 것이고 신하들을 시켜서 곡식을 팔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은 감독하러 한번씩 곡식을 파는 현장에 나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마침 자신의 형들이 곡식을 사라온 것을 보았습니다! 우연도 이러한 우연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
May 28
(사람은 나를 잊을 지라도…)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창세기 40:14) 요셉이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삶을 살다가 모함을 받아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옥에 갇칩니다. 하루는 요셉이 왕을 섬기던 술 맏은 관원장과 떡 맏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줍니다. 그러면서 요셉은 그들에게 꿈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까? 청컨데 내게 고하소서” 라고 말했습니다 (8절). 요셉은 자신이 꿈을 해석할수 있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꿈의 해석을 주시는 분임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 꿈을 해석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요셉은 이렇게 말함으로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신앙을 표현했고 동시에 자신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자임을 말하고 있는것입니다. 요셉은 비록 하나님께서 주신 꿈 때문에 억울하게 애굽에 종으로 팔려왔고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삶을 살다가 옥에 갇히게 되었지만 럼에
May 17
(은혜 다음에 오는 어려움)
“야곱이 기럇아르바의 마므레로 가서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 이르렀으니 기럇아르바는 곧 아브라함과 이삭이 거류하던 헤브론이더라” (창세기35:27) 벧엘로 돌아와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회복한 야곱에게 큰 슬픔이 닥칩니다.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아내 라헬리 아들을 낳다가 죽은 것입니다 (17-19절). 라헬이 죽을 때 아들 이름을 “베노미” 즉 “내 고통의 아들”이러고 으름을 붙이려하자 야곱은 다시 베냐민, 즉 “내 오른 손의 아들” 이라는 이름으로 고쳐 부릅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보내며 그녀가 남기고간 아들을 잘 돌보고 키우겠다는 다짐을 아내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야곱에게 연이어 힘든일이 닥치는데 자신의 장남, 르우벤이 서모 빌하와 통간을 한 것입니다 (22절). 이러한 악을 행하는 자는 구약의 율법에의하면 죽음에 해당합니다 (레 18:8). 그리고 야곱은 이 일에 대해 들었지만 아무런 말을 하지않습니다 (22절).
May 10
(불완전함을 통해서도 세워지는 하나님나라)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창세기 30:1) 창세기30장은 레아와 라헬이 자신들의 시녀들을 야곱에게 줌으로 경쟁적으로 아들을 낳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종을 남편에게 주어 아이를 갖게하는 것은 당시 고대 근동지방에서 널리 행해지던 관습이었습니다.그리고 이 본문에서 한가지 더 기억할 것은 레아와 라헬이 준 시녀들로 더불어 아이를 낳은 것은 옳은행위인가? 아닌가?를 본문을 통해서 판별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이는 율법을 주기 전에 일어난 일이고 또한 본문의 촛점이 이들이 한 일이 율법적으로 옳으냐 아니냐를 판별하는데 촛점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본문의 촛점은 하나님께서 이들이 사용한 불완전한 문화와 관습 그리고 시기심을 통해 하나님 백성의 12지파를 세우는데 사용하셨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긍훌이 있고
Apr 26
(시기와 믿음)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창세기 26:21) 이삭은 흉년으로 인해 블레셋땅인 그랄에 가서 거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흉년중에서도 농사의 결실을 백배나 거두게 하셨습니다 (12절) . 하나님께서 이삭과 함께 하신다는 증거였습니다. 이삭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거부가 되었을때 그곳 사람들이시기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판 우물을 더이상 쓰지 못하도록 다 막아버렸습니다 (13-15절). 그리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그 땅의 왕인 아비멜렉은 자신들보다 더욱더 강성해진 이삭을 떠나라고 말했습니다 (16절). 시기떄문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시기는 아무것도 아니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시기는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자가 그 결과로 가지게되는 죄악입니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
Apr 19
(예수님을 못밖는데 일조를 한 것들)
“그들이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요한복음 18:28) 예수님을 죽임에 넘기우는 재판은 의외로 빨리 진행 되었습니다. 목요일 저녁 군졸들이 예수님을 잡았고 금요일 이른 아침 대 제사장이 재판을 하고 오전에 빌라도에 넘겨주어 오후에 예수님을 못밖았습니다. 이렇게 날치기 재판을 통해 빨리 서두른 것은 금요일 저녁 부터 안식일이 시작되기 때문이고 이날이 시작 되기 전에 모든 것을 빨리 처리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는 유대인들을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빌라도에게 독촉을 합니다 (31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죽으심은 예정된 우리의 죄를 위한 대속의 죽으심임을 성경은 증거합니다 (32절). 하나님은 인간의 악함 까지도 사용하셔서 우리 죄를 대신 예수님께 심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십니다. 아이러니칼 하
Apr 5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리이다)
“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 하니라”(요한복음 12:19)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시는 기적을 행한 후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습니다. 유월절에 창여하기 위함이고 우리 죄를 위한 유월절 어린양이 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때 사람들은 에수님을 자신들을 구원할 왕으로 맞이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기적과 죽은 사람까지 살리는 것을 행한 사람이 자신들을 다스린다면 얼마나 강력한 나라가 되겠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호산나”(우리를 구원하소서) 이스라엘 왕이시여 라고 환호했습니다. 예수님은 한 어린 나귀를 만나서 타고 오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구약 성경에 메시아에 대한 예언으로 기록 된 것이었습니다 (슥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
Mar 22
(예수님의 일하시는 방식에 의문이갈때)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요한복음 11:4) 예수님의 사랑하시던 나사로가 병이들어 죽게되어서 나사로의 누이들이 사람을 요단강 건너편에 있었던 예수님에게 좀 급히 와서 동생을 고쳐달라고 사람을 보냈습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약 3키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에수님은 나사로의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있던 곳에서 2일을 더 지체하셨습니다. 그 과정에 나사로가 죽었고 그 다음에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사로가 있는 베다니에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자니 깨우러 가자고 말씀하셨다가 제자들이 정말로 나사로가 자는 줄로 생가하자 다시 죽었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원래 에수님을 잡아 죽이려하던 사람들이 많던 곳으로 다시 가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도마는 용감하게 예수님과 함께 같이 죽으로 가자고 말
Mar 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