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일하시는 방식에 의문이갈때)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요한복음 11:4) 예수님의 사랑하시던 나사로가 병이들어 죽게되어서 나사로의 누이들이 사람을 요단강 건너편에 있었던 예수님에게 좀 급히 와서 동생을 고쳐달라고 사람을 보냈습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약 3키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에수님은 나사로의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있던 곳에서 2일을 더 지체하셨습니다. 그 과정에 나사로가 죽었고 그 다음에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사로가 있는 베다니에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자니 깨우러 가자고 말씀하셨다가 제자들이 정말로 나사로가 자는 줄로 생가하자 다시 죽었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원래 에수님을 잡아 죽이려하던 사람들이 많던 곳으로 다시 가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도마는 용감하게 예수님과 함께 같이 죽으로 가자고 말
Mar 15
(나사로를 살리신 표적)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요한복음 11:6) 베다니에서 요단강 건너편까지는 약 20마일에서 30마일(차로 30. 40분 거리) 쯤됩니다. 그런데 베다니에 있는 나사로 집에서 나사로가 병이 들어 다죽게 생겼으니 예수님께서 급히 와서 나사로를 위해 기도해서 살려달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나사로는 두 여동생 마르다와 마리아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예수님께서 아주 사랑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베다니 쪽으로 가시는 길에는 항상 나사로 집에 들르시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나사로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들은 예수님은 당장 달려가지 아니하고 그 곳에 이틀이나 더 머물러 계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당장 베다니로 달려가지 아니하시고 이틀이나 더 머물다가 베나니로가셨습니까? 이 말씀에 대한 해답은 4, 15, 25, 26절에 나와 있습니다. 4절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
Mar 8
(육신의 안락을 넘어서는 기쁨)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한복음 4:34)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는 중에 음식을 사러갔다 돌아온 제자들이 예수님께 사온 음식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30,31절). 그때 예수님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2절). 그리고 34절에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4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예수님에게 그리고 예수를 믿는 자에게는 육신의 양식은 필요 없다는 말하는 것도 아니고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하는것도 아닙니다. 40절을 보면 나중 예수님은 사마리아인의 집에서 이틀을 묶고 또한 음식도 먹는습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우선순위입니다. 사명은 음식보다 안락보다 우선하는 것이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요한복음19:28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
Feb 15
(하늘에 이르는 사닥다리)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51) 자신의 마음 속까지 꿰뜛어 보시는 예수님의 말을 들은 나다나엘은 예수님에게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합니다 (49절).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처음으로 나다나엘이 메시아로서 예수님의 신적인 위치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단순한 선지자도 아니고 위대한 스승도 아닌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했습니다. 나다나엘의 믿음의 고백을 들은 예수님은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고 말씀하신 후 (50절),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1절). 지금 예수님은 나다나엘과 말씀하고 있지만 “보리라”는 동사는 이인칭 복수로서 “너희들이 보리라”는 말입니다
Feb 8
흠 없는 제물로서의 삶
“너는 내 앞에 행하여 완전하라” (창세기 17:1) 아브람이 가나안땅에 거한지 10년이 되는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이가 없자 아내 사래는 아브람에게 여종 하갈을 주어 아이를 가지게 합니다 (1-3절).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더 쉬운 인간의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아내가 그 방법을 권하자 아브람은 받아들입니다 (2절). 마치 하와가 사단의 꾐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고 그것을 아담에게 주자 아담이 순순히 받아 먹을 것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손의 약속을 주신것은 아브람과 사래에게 주신 약속이지 아브람과 이방여인인 하갈에게 주신 약속은 아닙니다. 아브람이 자신의 종 엘리에셀이 자신의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을때 하나님께서는 “네 몸에서 날자가 후사가 되리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창 15:4). 그러나 그 약속의 말씀을 끝까지 인내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일을 거르치는 행동을 사래와 아브람은 하게됩니다. 10년이라느 세월은 결
Jan 25
(에덴동산과 교회 공동체).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창세기2:8)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또한 에덴 동산을 만들어 그 동산에 거하게 하고 또한 지키게하셨습니다. 2장은 사람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1장에 이어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사람을 흙으로 만드셨습니. 그리고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어 비로서 살아있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7절). 그러므로 사람은 단순한 물질로 구성된 물질 적인 존재가 아니라 영적인 존재입니다. 또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특별한 피조물이지만 동시에 (1: 26, 27), 결코 하나님과 동등이 될 수 없는 흙으로 지음을 받은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항상 기억해야만 했습니다.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창조하시고 거기에 사람을 거하게하셨습니다 (8-14절). 하나님은 이 에덴 동산에 실과 나무들 (9절), 강들 (10절), 금 (11, 12절), 보석들 (12
Jan 11
(여호와를 찬양하며 새해를 살아갑시다)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할지어다” (시편 149:1) 이 시편은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을 맺는 찬양시입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새 노래”를 계속 만들어서 그 새 노래로 하나님을 새롭게 그리고 계속적으로 찬양해야하고 찬양할 수 밖에 없습니까? (1절).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만드시고 우리의 삶을 친히 다스려나가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즉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를 지으신 자로 인하여 즐거워 해야한다고 말씀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의 다른 표현인 “시온의 주민(아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왕으로 두었음을 인해 찬양해야 합니다 (2절).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친히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백성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만드시고 다스리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4절). 간혹 보면 어떤 부모는 자신이 낳은 아이를
Jan 4
(크리스마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복음 1:14) 말씀(예수님)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날이 성탄절입니다. 여기서 “되다”는 단어는 중요한 단어로서 “변하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과 같이 되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계시지 다른 무엇이 되지 않습니다. 즉, 결코 변하지 않으십니다.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하나님으로 계셔야하고 계시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해서 다른 무엇이 되거나 인간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만족하시는 분이시고 스스로 충족하신 분이시기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스스로 변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인간이 되신것입니다. 결코 변하지 않는, 변할 필요도 없는,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말씀이”) 스스로 변하시기를 작정하셨고 인간
Dec 21, 2025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시편 139:17,18). 다윗은 17절에 고백하기를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운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라고 고백합니다. 주님은 자신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어머니 뱃속에서 부터 자신을 지으심으로 자신의 삶에 개입하셨고 그 이후로도 나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자신의 삶 가운데 계속적으로 개입하셨고 자신의 삶에 대해 이미 다 아신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얼마나 귀하게 대하셨는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자신을 향한 주님의 그러한 세심한 배려와 생각이 너무나 보배롭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주님께서 자신에게 대한 생각해 주시는 것을 생각할 때 그것이 너무 보배롭고 자신 향한 수 많은 생각들이 있음을 생각하
Dec 14, 2025
(믿음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여야 합니다)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에스라 9:2,3).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죄악으로 베벨론 포로로 끌려가 70년의 하나님의 징계 의 시간들을 거친 후 본토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이유는 하나님 외에 우상을 섬겼기 때문이고 믿지 않는 이방인들과 결혼을 함으로 믿음에서 떠났기 때문이었습니다 (10-12절).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본토로 다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 중 본이 되어야 할 지도자들이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들과 결혼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했습니다 . 지도자들이 그러한 행동을 거리낌 없이 했다면 일반 백성들에게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력을 끼쳤겠습니까? 이를 본 에스라는 옷을 찢음으로 극심한
Nov 16, 2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