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을 내릴 때 생각해야 할 것)
“이와 같이 이 날에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 굴복하게 하신지라”(사사기 4:23) 사사기 4, 5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를 하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왕 하솔의 지배가운데 살게 허락하셨다가 이스라엘 백성이 고통 가운데 부르짖자 드보라 라는 여자 사사를 일으켜서 이스라엘을 구원 한 사건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는데 여 선지자 드보라를 통해 지시를 하고 바락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고통을 주던 가나안왕 야빈을 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드보라를 통해 이스라엘 구원계획을 알리고 바락에게 이 일을 맡기실 작정이셨습니다. 그런데 바락은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승리의 약속을 믿지 못했습니다다. 왜? 오합지졸 이스라엘 백성 1만명으로 시스라의 강한 철병거가 있는 군대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락은 드보라에게 “당신이 나와 함깨 가면 가려
6 days ago
(가나안 백성을 쫓아내지 못한이유)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사사기 1:28). 사사기서는 애굽의 종 살이하던데서 해방되어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벡성들이 행한 일들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데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약속하셨고 마침내 그 땅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하나님에대한 믿음으로 가나안 백성과 싸워 이겨 그들을 쫓아 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 백성들을쫓아내지 못했고 그 이유를 말합니다. 먼저 가나안 땅 백성들의 무기가 강력해서 두려움때문에 그들을 쫓아내지 못했고 결국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사사기는 영적으로 점점 타락해가고 힘을 잃어가는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사사기의 기록들은 나선형의 기록들이라고 말합니다.
Sep 6
(위기의 때, 시험의 때)
“앗수르 왕이 라기스에서부터 랍사게를 예루살렘으로 보내되 대군을 거느리고 히스기야 왕에게로 가게 하매 그가 윗못 수도 곁 세탁자의 밭 큰 길에 서매…”(이사야 36:2). 오늘 이사야서 말씀은 열왕히가 18장에도 기록되어있는 말씀입니다. 당시에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나누어져 있던때. 히스기야는 신실히 하나님을 섬겼고 그러한 왕이 없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열왕기하18:1-8).그는 산당을 제하고 다른 신들의 목상들도 다 깨뜨려 버리고 당시 모세가 만든 놋뱀을 하나님 같이 섬겨왔었는데 그 놋뱀 우상도 부수어 버렸습니다.또한 앗수르룰 섬기지 아니하고 여호와만 섬겼습니다 (열왕기하 18:7). 그래서 그의 나라가 형통하게 되었다 고 말씀합니다 (열왕기하18:7). 그러나 이러한 형통에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잇수르왕 산혜립은 유다를 침공해 중요도성들(46개)를 포위하고 접령했습니다. 유다왕 히스기야가 팽창하던 아시리아를 견제하려고 친이집트 정책을
Aug 30
(위기를 만났을때 먼저 해야할 일)
“애굽의 도움은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 일컬었느니라” (이사야 30:7) 유다가 적의 공격에 처해있을때 그들은 하나님을 먼저 의지하기 보다 당시 강대국인 애굽을 찾고 애굽의 도움을 먼저 구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은 참담한 실패로 끝날 수 밖에 없고 기대와 다르게 애굽은 유다에게 수치와 모욕만 가져다 줄 뿐이라고 말씀합니다 (3절-5절). 애굽은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 할수 있는 “라합”이라고 말씀합니다. 히브리어 “라합”은 시편 87편 4절에서 이집트를 지칭하는 이름으로도 등장하고 또한 혼돈을 상징하는 신화 속 바다 괴물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됩니다(51:9). 즉, 애굽은 하나님의 통제 아래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냥 앉아만 있을 수 있는 괴물일 뿐이라고 말씀합니다 (7절). 결국 그들이 쌓은 것은 무너져 내릴 것이고 (13절) 이룬것들은 사라질 것입니다 (14절) 또한 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Aug 23
(교만)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이사야 14:12-14) 이 말씀은 바벨론의 멸망을 비유와 상징적으로 말씀한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을 많은 신학자들은 바벨론의 교만을 빗댄 사단의 타락을 말씀한 구절이라고도 말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사단의 우두머리를 “루시퍼”라고 말하는데 이 단어는 성경에는 없습니다. 라틴어 불가타역 성경에서 “계명성”을 “루시퍼”로 번역했는데 영어성경 KJV가 그대로 “루시퍼로 번역한 것이고 이를 통해 사람들은 사단의 우두머리 이름을 루시퍼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계명성”의 뜻은 day star, 새벽에 뜨는 샛별을 의미한다. 그리고 “루시퍼”의 뜻도 bearer o
Aug 9
(참 포도나무)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이사야 5:4) 농부이신 하나님께서는 좋은 종자의 포도나무(이스라엘)을 구하여 가장 좋은 땅에 심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정성을 다해서 가꾸었지만 열매가 맺친것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들포도였습니다. 농부의 모든 수고를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시편 80:8을 보면 포도나무는 주께서 애굽으로 부터 구원해내서 심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했고 구원하셨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지위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포도나무는 불에 타 버렸습니다 (시편80:16).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맞기신 역할 즉, 이방의빛(이사야 49:6)이 되어 하나님의 구원을 땅 끝까지 전하는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우상을 섬기는 이방 나라를 주께로 이끌기보다는 그들이 섬기는 우상들을
Jul 26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예배와 삶)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이사야 1:12). 이사야서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고 말씀합니다. (1절). 이시야 선지자는 먼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에 대해 지적합니다. 그들의 죄악들은 “정의”와 “공평”이 사라진 것입니다(21절). 재판에서는 하나미의 율법으로 판결이 이루어지는데 그 재판이 공평하고 정의롭게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힘 없는 고아와 과부들을 돌아보지 않았고 공의로운 재판이 이루어지도록 돕지도 않았습니다 (17절,23절). 하나님의 백성은 당시 가장 힘 없고 가난한 객과 과부와 고아를 돌보도록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해 명령하셨습니다 (신 14:29). 그리고 객을 돌보고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행위는 이스라엘 백성도 과거 애굽에서 그러한 학대와 어려움 가운데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
Jul 19
(자연 만물에 나타난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기)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시편 8:1) 이 시편을 쓴 다윗은 3,4절에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푸른 하늘, 빤짝이는 밤 하늘의 별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위해 이 모든 것을 만. 드셨다는 것을 기억하고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6일동안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천지 창조의 목적은 인간 창조입니다. 인간을 위해서 천지 만물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만물들을 만드신 순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순서를 보면 하나님은 먼저 동, 식물들이 살수 있는 공간을 먼저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낮과밤, 하늘과 바다 그리고 땅을 만들었습니다. 그 후에 해와 달 별들을 만들고 그 하늘과 땅 , 바다에서 살수 있는 새들과 동물, 바다생물들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사람이 먹고 살 수 있는 모든 환경을 만들고나서 마지막
Jul 12
(말씀을 기뻐함)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시폄 1:2) 1절에서 “복있는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는데 영어 성경은 좀더 실감있게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얼마나 복이 있는 사람인가! 그 사람은 다음과 같은 사람이다…”. 그런데 시편 1편은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어떻게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는가?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복있는 사람이 해야하는 행동에 대해 2절은 말씀합니다. 복 있는 자가 행해야하는 행동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을 인생의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2절에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 이라는 칭호와 “여호와” 라는 칭호를 약간 다르게 사용합니다. 하나님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여호와”로 부를때는 언약의 하나님, 이스라엘을
Jul 5
(사랑에 기초한 신앙적 행동)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린도전서 13:13) 우리가 사는 사회, 직장에서 요구하는 것은 동기가 아닌 결과입니다. 아무리 좋은 동기를 가지고 일을 했어도 그 결과가 좋지 않으면 사회에서나 직장에서 받아 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동기가 어찌하든 좋은 결과를 위해 어떠한 것도 희생 하려고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랑이 동기가 되어 행하지 않는 모든 신앙적인 행위들, 봉사, 헌신들은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v. 1-3)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사랑은 이기적인 마음이 아니라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마음의 상태입니다 (v. 4-7). 부정적으로, 사랑은 자랑, 교만, 무례히 행하지 아니합니다. 자기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성내지 아니하고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고 (상대방의 잘못에 대한 기억을 두고두고 하지 않음) ,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합니다. 긍정적으로,
Jun 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