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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일하시는 방식에 의문이갈때)

  • Mar 15
  • 2 min read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요한복음 11:4)

 

예수님의 사랑하시던 나사로가 병이들어 죽게되어서 나사로의 누이들이 사람을 요단강 건너편에 있었던 예수님에게 좀 급히 와서 동생을 고쳐달라고 사람을 보냈습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약 3키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에수님은 나사로의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있던 곳에서 2일을 더 지체하셨습니다. 그 과정에 나사로가 죽었고 그 다음에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사로가 있는 베다니에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자니 깨우러 가자고 말씀하셨다가 제자들이 정말로 나사로가 자는 줄로 생가하자 다시 죽었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원래 에수님을 잡아 죽이려하던 사람들이 많던 곳으로 다시 가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도마는 용감하게 예수님과 함께 같이 죽으로 가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에수님은 예수님을 위한 의협심을 보고 충성심을 보려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은 다음에야 그 위험한 곳인 베다니에 나사로를 다시 살리러 가셨습니까? 사람을 통해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예수님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고 말씀하셨음에도 왜 나사로는 죽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고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4절). 이로인해 결국은 제자들로 하여금 에수님에 대한 확실한 미음 가운데 있게하기 위해서입니다 (15절). 우리는 종종 에수님의 지체하심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없을때가 종종 있습니다. 왜 그때 거기에 에수님께서 게시지 아니하셔서 슬픔과 눈물을 흐르게 만드십니까? 이 말은 에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말이 아니다. 예수님의 일하시는 방식에 관한 의문이자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원하고 그 결과 우리들에게 유익이 되는 결과를 주는 일의 방식을 선호하십니다.

 

우리가 때때로 예수님의 존재가 아니라 일하시는 방식에 의심과 의문이 날때에도 주님을 계속적으로 신뢰하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일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유익을 위한 두마리 토끼를 잡으실 것입니다. 이를 위해 지금 내가 조금 흘리는 눈물은 가치가 있지 아니합니까? 그리고 한가지 더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영화는 결말까지 보아야합니다. 중간만 보고 영화관에서 나온다면 그 사람은 평생 그 영화에 대해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때때로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에 대해 이햐하지 못할때가 있을때 그때는 끝까지 주님을 신뢰하며 기다릴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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