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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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 서기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6:1). 오늘 본문 말씀은 그리스도인이 삶을 살면서 자신의 의를 드러내기위해 종교적 행위를 하지말것을 말씀하십니다. 이를 위해 구제, 기도 금식의 예를 듭니다. 구제는 구약에서나 신약에서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의무이자 (신 15:8) 순종해야할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신 15:11), 또한 그리스도인이 구제를 행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행하는 하나님의 일이었습니다 (마 5:42, 48절 참조). 그러므로 구제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삶의 일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구제는 “은밀하게”행해야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하나님 백성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대신해서 해야할 거룩한 행위인 구제를 자신의 의를 나타내는 종교적 도구로 사용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칭찬을 통해 자신의 영광을 얻으려고 구제를 했고 그들의 바람대로 되었습니다. 사람의 칭찬이 그들이 받기를 원하는 상이었고 사람들이 칭찬함으로 그 상을 이미 받았으니 구제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줄 상은 없다고 말씀합니다.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2절).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루에 3번씩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경건의 행위까지 사람에게 보이려고 행하는 자들이 있었는데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나심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마태복음 2:3). 동방의 박사들이 특별한 별이 나타난 것을 보고 “유대인의 왕”이 태어난 줄알고 경배하러 예루살렘으로 와서 유대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계신가?를 물어보았을때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소동했습니다 (2절). 자신들이 알지 못한 다른 왕이 탄생했다는 것은 헤롯왕의 지위를 위협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헤롯은 구약 성경에 정통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묻습니다 (4절). 동방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이 어디서 났느냐고 물었던 반면, 헤롯은 동방박사들의 말을 듣고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헤롯은 그리스도(구원자)가 곧 왕 이라는 사실을 인식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삶의 왕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왕권을 위협하는자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삶의 구원자와 동시에 왕으로 우리삶을 다스리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삶의 왕으로 점점 인정해가는 과정입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 받았으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닙니다. 우리의 삶 전체를 우리 주님께서는 왕으로서 다스리기 원하십니다. 우리 모든 부분을 주께서 다스리시도록 점점 주께 내어드리는 것이 바른 신앙의 삶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구

왜 극심한 고난중에 주를 의지해야하는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주의 증거로 내가 영원히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시편 119: 105,111) 시편기자는 자신이 극심한 고난가운데 있었지만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가운데 낙심과 절망에 빠져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고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고 떠나지 아니했다고 고백합니다 (109, 110절). 이렇게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의 말씀은 자신의 발에 등이요 길에 빛이기 때문입니다 (105절). 오래전 별빛 달빛도 하나 없는 완전히 칠흑같은 시골길을 걸어가본적이 있습니다. 시골에는 모두 다음날 농사일 때문에 모든 불을 다 끄고 일찍 잠자리에 듭니다. 그러니 별빛이나 달빛이 없는 한 밤중에 가로등도 없고 집에서 새어나오는 불빛도 없으니 깊은 시골은 그야말로 앞이 한치도 보이지 않는 칠흑이됩니다. 시골시람들은 그러한 환경에 이미 익숙해져서 그 칠흑같은 어두움속에서도 길을 갈 수 있지만 그러한 어두움을 경험하지 못한 도시의 사람들은 그야말로 한 발자국을 옮기는데 너무나 힘이듭니다. 이때 내 발을 비춰주는 등불이 있고 앞길을 비춰주는 빛이 있다면 그 빛들은 자신의 삶을 밝히는 빛이 됩니다. 시편기자는 자신의 앞길이 칠흑같이 어두움 깜깜한 가운데서 주의 말씀을 의지하는 이유는 그 말씀이 자신의 삶을 비춰주는 등불과 같고 빛

고난을 콘트롤 해나가기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편 119:71) 시편기자는 고난을 당하고 있었다는 것을알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마치 줄로 옭아 매는 것과 같은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61절). 그리고 사람들은 거짓말을 만들어 자신을 모함했습니다 (69절). 그러나 시편기자는 고난당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익이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시편기자는 고난이 저절로 주의 말씀를 지키게 해 주었고(67절) 그래서 고난이 오히려 자신의 삶에 유익이 되었다고 (71절) 고백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주의 말씀을 신뢰했습니다 (6절).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통해서 지금도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믿었고 그래서 고난 중에 ‘무엇때문에 자신은 힘든 삶을 살아가는가?’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무엇을 깨닫게 하시기를 원하시는가?’에 대한 이유를 물어보고 하나님의 답을 듣기 위해서 주의 말씀을 부지런히 찿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의 문제에 대해, 자신의 삶에 대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분명히 이야기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없었다면 시편기자는 고난의때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난 중 말씀을 통해 그가 배운 것은 자신이 그릇된 길을 간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고난을 통해 주의 말씀을 지키게되었다고 고백합니다 (67절). 그래서 시편기자는 고난 받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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