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이란?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누가복음 10:36).
율법사는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를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29절). 이 질문을 예수님께 한 이유는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님께 그런 질문을 했다고 말씀합니다(29절). 율법사는 이웃을 자기 친구들 주변에 사는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생각했고 예수님께서 ‘그들이 네 이웃이다’ 라고 말한다면 자신을 “내 이웃”을 사랑하라는 율법을 다 지켰다고 대답할 요량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의 이야기를 율법사에게 들려주셨습니다. 길가다가 강도를 만나 거반 죽게 되었는데 종교 지도자였던 제사장이나 성전일을 하던 레위인은 그 사람을 보고 필요한 도움은 주지 않고 그냥 지나가 버렸지만 유대인들이 아주 경멸하던 사마리아인은 그 강도만나 사람을 도와주었습니다.
율법사는 “누가 내 이웃입니까?”를 질문했지만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시고 난 후 그 율법사에게 물어본 것은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였습니다(36절). 여기서 율법사는 “나”의 점에서 이웃을 정의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것은 바른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이웃은 “도움이 필요한 자”의 관점에서 정의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 마음이 맞는 사람과만 교제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나도 그 사람을 잘해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나와 생각이 맞는 사람들 과만 이야기하고 그렇지 않는 사람들은 나의 대화 대상에서 배제합니다. 그러니 내 주변의 친구들은 다 나와 맞는 사람이고 그들을 잘 대해줄 수밖에 없는 사람들만 남습니다. 이렇게 “나”의 관점에서 이웃을 정의한다면 사랑하지 못할 이웃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웃의 정의를 “나”의 관점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관점에서 재 정의하라고 하십니다. 즉, 성경이 말하는 이웃이란 “나의 도움이 필요한 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나의 도움이 필요한 그 사람이 나의 민족과 어떠한 관계에 있던지 개인적으로 어떠한 불편한 관계에 있던지 나의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행한다면 그 사람은 내 이웃이 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의 말씀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도움이 필요한 그 사람이 과거 나에게 무슨 못된 일을 했던지 나의 도움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될 때에도 하나님 말씀에 내 생각과 의지를 굴복하고 하나님 말씀에 따라 그 사람을 돕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입니다 (누가복음 14:27). 왜냐하면 예수님도 그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관점에서 우리를 볼 때 우리를 사랑할 만한 하등의 이유가 없지만, 우리가 영원한 죽음에서 벗어서 영생으로 들어가려면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우리의 필요의 관점”에서 우리를 돕기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