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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악한 계획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섭리

오늘 큐티 말씀은 마가복음 15:1-15 말씀입니다.

불법으로 예수님을 빨리 사형에 처하려고 하는 대제사장과 종교지도자들과 유대 총독인 빌라도가 자신의 정치생명의 문제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주는 악한 계획을 오히려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신 사건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주어 처형 하게한 것은 “새벽”에 일어났다고 말씀합니다 (1절). 이들은 예수님의 처형을 매우 서두르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목요일에서 금요일로 넘어가는 밤에 이들은 예수님을 기습적으로 체포했고 이제 금요일 새벽이 밝아왔습니다. 토요일은 안식일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처형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서두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 자신들이 율법(토라) 다음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던 “미쉬나”에 의하면 중요한 재판은 안식일이나 유월절과 같은 대 축제일 전날에 열리지 않도록 해야만 했고 그 재판은 성전 안 돌로 잘라 만든 홀에서 열어야만 했지만, 자신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종교적인 규정까지 어기면서 예수님의 재판을 속전 속결로 진행하려고 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가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최고 법 집행기관인 데 제사장들과 종교지도자들이 모인 산헤드린 공회에서는 사형 판결은 할 수 있지만 사형 집행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예수님을 신성모독 죄로 판결하여 로마 총독인 빌라도에게 사형을 집행하도록 넘겼습니다. 다음날은 안식일이기 때문에 당일 예수님의 사형 집행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죄 때문 보다도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에 대한 “시기”로 인해서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10절). 명절에 한 사람을 사면해주는 일이 있어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사면해주려고 했지만 무리들은 종교지도자들의 충동에 의해서 예수님을 민란을 주도한 바바라 대신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했습니다 (11절).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악한 것을 찾지 못했지만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줍니다 (15절). 자신이 다스리는 이스라엘 땅에서 군중들의 반란이 일어나면 이스라엘 총독으로 있던 빌라도 자신의 정치적 생명에 큰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군중들을 잠재우려고 예수님을 십자가 형에 처하라고 명령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한 것은 종교지도자, 무리들 그리고 빌라도 모두의 합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의 완벽한 계획에 의해 진행되는 서두름이 오히려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방편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예수님을 유월절 어린양으로 상징되도록 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게 됩니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 되셨느니라” (고린도전서 5:7). 구약의 유월절에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름으로 죽음의 사자가 넘어갔듯이 예수님의 피로 죽음의 심판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종교지도자들의 악한 의도에 의한 서두름이 오히려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던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 양으로 돌아가셨다는 상징을 더욱더 분명하게 나타내 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려고 하는 일이 오히려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 되어버렸으니 얼마나 아이러니 합니까!

믿음 안에 있는 사람에게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세상은 우리를 해하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역 이용하여 오히려 우리에게 선한 것으로 바꾸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악한 계획을 오히려 하나님의 자녀의 삶에 유익이 되도록 이용하십니다. 이것을 믿는 믿음이 하나님의 섭리는 믿는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잘못되어가고 있는 상황 가운데서도 모든 것을 컨트롤 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합시다. 악을 역 이용해 선으로 뒤바꾸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합시다.

윌리엄 카우퍼(William Cowper) 쓴 찬송 시 중 “주 하나님 크신 능력”(80장)이 있는데 이 찬송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에 대해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한국 가사는 영어의 원 뜻을 잘 표현하고 있지는 못한데 영어 원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신기한 방법으로 섭리하시는 도다. 그분은 경이롭게 일하시니 바다에 그분의 발자취를 남기며 폭풍우 위로 걸어가시는 도다. 저 깊고 깊은 생각 위에 내가 알 수 없는 신묘한 기술로써 자신의 밝은 계획을 높이 세우고 그 분의 주권적인 뜻을 이루시는 도다. 내 부족한 판단으로 주를 판단치 말찌니 은혜로우신 그 주님을 의뢰할 지라. 그분의 오묘한 섭리 뒤에 자신의 미소 짓는 얼굴을 숨기시는 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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