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일하시는 방식에 의문이 갈때...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요한복음 11:6)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던 나사로가 병이들어 죽게되자 나사로의 누이들은 사람을 요단강 건너편에 있었던 예수님에게 보냈습니다. 위급하니 즉시와서 동생을 고쳐달라고 전갈을 보냈던 것입니다 .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약 3키로 떨어진 곳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사로의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있던 곳에서 이틀을 더 지체하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사로가 죽었고 그 다음에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사로가 있는 베다니로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베다니는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하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왜 예수님은 급하니 도와달라고 요청할때 도와주시지는 않고 나사로가 죽은 다음에 그 위험한 곳인 베다니에 가셨습니까? 사람을 통해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예수님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고 말씀하셨음에도 왜 나사로는 죽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고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4절). 그리고 이로인해 결국은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15절). 결국 죽은 나사로를 살림으로 이 두가지 목적을 다 이루십니다.

우리는 종종 예수님의 지체하심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없을때가 종종 있습니다. ‘왜 그때 거기에 예수님께서 계시지 아니하셔서 슬픔과 눈물을 흐르게 만드셨는가?’ 라는 질문을 할때가 잇습니다. 이 질문은 예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일하시는 방식에 관한 의문이자 질문입니다.

예수님의 지체하신 사건은 때때로 예수님의 존재가 아니라 일하시는 방식에 의심과 의문이 날때에도 주님을 계속적으로 신뢰하라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일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유익을 위한 두마리 토끼를 잡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지금 내가 흘리는 눈물은 그만한 가치가 있지 않겠습니까?

영화는 결말까지 보아야합니다. 중간만 보고 영화관에서 나온다면 그 사람은 평생 그 영화에 대해 바로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때때로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에 대해 이해하지 못할때, 그때는 끝까지 주님을 신뢰하며 기다릴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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