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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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복음 1:14) 말씀(예수님)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날이 성탄절입니다. 여기서 “되다”는 단어는 중요한 단어로서 “변하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과 같이 되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계시지 다른 무엇이 되지 않습니다. 즉, 결코 변하지 않으십니다.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하나님으로 계셔야하고 계시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해서 다른 무엇이 되거나 인간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만족하시는 분이시고 스스로 충족하신 분이시기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스스로 변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인간이 되신것입니다. 결코 변하지 않는, 변할 필요도 없는,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말씀이”) 스스로 변하시기를 작정하셨고 인간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육신이 되어”). 왜냐하면 사랑때문입니다. 한 남자가 창문가로 다가가 바깥을 내다봅니다. 그때 갑자기 창문 밖에서 무언가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자세히 보니 몇 마리 새들이 창문가에 앉아 있는 겁니다. “저런, 저 새들이 밖이 너무 추우니까 창문으로 들어오려고 했나보군. 그래 우리 집 헛간이라면 저들의 추위를 막아줄 수 있겠지?” 이렇게 생각한 남자가 밖으로 나가더니 헛

종교적 삶과 순종의 삶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과 고관들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사령관을 따르는 갈대아 사람의 모든 군대가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더라” (예레미아 52:13,14)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갈리워져있었습니다. 두 왕국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 예배는 드리고 종교적인 의무는 행했지만 그 가운데 말씀을 순종하는 진정한 믿음의 삶은 없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징계로 북이스라엘은 기원전 772년 앗수르에의해 멸망 당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북이스라엘과 같은 죄악 가운데 살면서도 여전히 멸망당하지 않고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멸망 당하지 않은 까닭은 자신들의 땅에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었고 그곳에서 계속 제사를 드려왔 또한 다윗 성이 있었음으로 다윗 왕조가 그들과 함께 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되었을것입니다. 자신들은 언약의 백성으로서 언약의 말씀을 무시하고 순종치 않는 삶을 살면서도 언약의 상징인 예루살렘 성, 성전을 소유하고 있고 제사를 드림으로 종교적 의무를 행했다는 사실만으로 자신들의 안전과 평안을 확신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이 언약의 상징들을 마치 부적인양 생각했던 것입니다. 거짓 환상 가운데 있엇던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적인 의무는 다하지만 언약의 백성으로서 주어진 언약의 말씀을 순종하기를 거부한 유

용서와 회복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 그 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찾아내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남긴 자를 용서할 것임이라” (예레미아 50: 20). 하나님께서는 비록 죄악된 당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바벨론을 사용하여 벌하셨지만 여전히 그들을 “나의 산업”(혹은 “나의 소유”/11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백성을 다시 회복시킬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래서 교만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께서 말씀한것보다 더욱더 잔인하게 학대한 바벨론을 멸하고 (18절) 하나님의 징계로 말미암아 흩어진 이스라엘을 그 목장으로 다시 돌아오게 할 것이며 (19절), 그래서 “이스라엘의 죄(허물)”과 “유다의 죄”를 완전히 말소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0절). 그래서 이사야 30:26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온자가 경험하게될 회복은 이전보다도 더 놀라운 회복이 될 것임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의 죄악을 매섭게 벌하시지만 또한 완전한 용서와 이전보다 더 놀라운 영적인 회복도 아울러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이 축복을 누리는자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남은자”입니다 (20절). 남은 자란 어떠한 자입니까? 에스겔 33:11,12은 이

평탄함이 축복만은 아닙니다.

“모압은 젊은 시절부터 평안하고 포로도 되지 아니하였으므로 마치 술이 그 찌끼 위에 있고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기지 않음 같아서 그 맛이 남아 있고 냄새가 변하지 아니하였도다” (예레미아 48:1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주변의 나라들의 죄악을 드러내며 벌하시는데 모압의 죄는 “평탄한 삶”을 통한 영적인 무감각이었습니다. 모압은 특별한 전쟁이 없는 평온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젊은시절부터 평안”했으며 전쟁에서 패함으로 포로로 잡혀가는 일들도 격지 않았습니다. 굴곡이 없는 삶이 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모압을 찌꺼기가 병 밑에 남아있고 한번도 병을 옮기지 않은 포도주로 비유합니다. 당시 포도주를 만들때 처음에 포도를 짜서 병이나 가죽 부대에담아 숙성되도록 기다립니다. 이 기간동안에 침전물은 바닥에 가라 앉습니다. 그리고 40일의 숙성 기간이 지나면 포도주는 조심스럽에 다른 병이나 가죽부대에 옮겨 담습니다. 이때 찌꺼기가 따라오지 않도록 완전히 분리 시켜야합니다. 만약 찌꺼기가 따라들어와 남게되면 포도주는 껄죽하게되고 너무 달게되어서 결국에는 썩게됩니다. 포도주를 옮겨담는 힘든 과정이 없는 너무 평탄한 삶은 영적인 무감각으로 인도합니다. 삶이 너무나 편안하고 너무나 재미 있어서 하나님의 필요성도 못느끼고 하나님 존재와 구원에 대해 느끼지 못합니다. 영적인 무감각은 또한 영적인 교만으로 인도합니다. 마치 스바냐 1:12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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