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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두려움과 예수님의 부활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멸하시며”의 헬라어 단어는 “쓸모없이 만들다”는 뜻이다)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히 2:14, 15)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이치라고 히브리서 9장 27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음은 죄에 대한 댓가이기때문입니다 (로마서 6:23).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확실한 것은 죽는다는 것이고 가장 불확실한 것은 언제죽느냐는 것이다."

사단이 하는 일은 두려움을 주는 일입니다. 사단은 죽음을 무기로 우리를 위협하고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를 끊임 없는 두려움 가운데로 몰아넣습니다.

사람이 이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보통 2가지 입니다. 한가지는 죽음을 아예 무시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한가지는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 자신의 현재의 삶에만 집중합니다. 그래서 현재 주어진 삶을 최대한 으로 즐기며 기쁨을 만끽하려고 함으로 죽음을 극복하려고 합니다.

톨스토이는 그의 중편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침내 죽게 될 존재임을 습관적으로 부인하며, 애써 죽음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이 책에서 톨스토이는 불치병에 걸린 주인공이 죽음의 언저리에서 표출하는 공포, 불안, 고독, 절망 등의 부정적인 심리 상태를 너무도 사실적으로 묘사합니다. 그리고 최후의 순간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결국 죽기 직전, 삶이란 매 순간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임을 깨닫습니다. 오랫동안 자신에게 머물러 친숙해진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그래, 바로 이것이었어...아, 이렇게 기쁠수가!"라고 외치며 세상을 떠납니다.

저는 이러한 외침을 누구나 다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외침을 할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 죄값을 다 치루신 사건이요 예수님의 부활은 그것을 하나님께서 확인해 주신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2:14, 15은 예수님의 죽음은 그리스도의 희생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사단의 권력의 실체를 벗기시며 우리로 하여금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미 이루신 그 구원의 완성가운데로 들어가는 문(門)이됩니다. 세상에서의 모든 고통과 수고를 다 내려놓고 우리 주님의 자비와 은혜에 자신을 온전히 맏기는 시간이 됩니다.

"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린도전서 15:5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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