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죽음을 대하는 자세)
- 김 광철 목사
- 4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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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립보서 1:21)
바울은 죽음을 어떻게 생각했고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죽음을 대하는 자세는 어떠해야하는가?를 이 구절이 말씀합니다.
죽음은 육신의 고난에서 해방되어서 쉼을 얻는 상태이지 그냥 존재 자체가 없어지거나 아니면 미신믿는 사람들이나 베뢰아 라는 이단이 주장하는 것 처럼 죽은 영혼이 떠돌다 귀신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죽음을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라고 말히고 있고 (23절),성경은 죽은자를 가리켜 잔다라고 표현을 씁니다. 또한 죽음은 육신적으로는 잠시 이별을 하기 때문에 슬프지만 성경은 슬픔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시편 116:15을 보면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5:8을 보면,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라고 말씀합니다. 영어 성경과 헬라어 원어 성경에는 “집에 주와 함께 거하는 것” 이라고 표현 합니다. 즉 영원히 우리 주와 함께 살게되는 우리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죽음이라고 말씀합니다. 타향살이 고달프게 하다가 이제 때가되어 하나님 아버지 계서 계시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죽음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죽는 성도는 육신의 고난으로 부터 쉼을 얻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완전한 구원의 완성을 맛보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재린하실때 성도는 구원의 완성가운데로 들어가게되고 완전한 구원의 완성을 누리게됩니다.
뉴욕에 빙햄톤에 있는 한 은행에서 자신과의 경쟁 은행이 새 장소로 이전하자 축하 카드와 함께 꽃을 배달 시켰습니다. 그런데 꽃집에서 실수로 다른 카드를 그 은행에게 보냐게 되었는데 그 내용이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였습니다. 장례식장에 가야할 카드였던 것입니다. 꽃집 주인은 자신의 실수를 알고 미안해하며 사과를 했습니다. 그런데 더 큰 일이 벌어졌습니다. 다시보낸 은행에 가야할 카드가 장례식장으로 배달이 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새로운 장소로 이전하게 됨을 축하합니다.”
이 카드 내용은 그리스도인의 죽음에 대해 잘 설명해 줍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죽음이란 이 땅에 있을때 우리 주님 안에 거하다가 이제 새로운 곳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께 가서 함께 영원히 있게되는 것입니다. 죽음은 전햐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영으로 함께하시는 우리 주님을 경험하다가 이제 주님을 완전하게 경험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고 죽음도 헛된 것이 아니라 유익한 것입니다. 이땅의 고난과 일을 그치고 하나님 곁에 쉬로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완전한 연합으로 들어가고 완전한 구원 가운데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고향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죽음도 유익하다고 말하는 것이고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죽음을 대하는 자세여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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