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준과 하나님의 수준)
- 김 광철 목사
- 3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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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에스더 4:14).
페르시아 왕국 제 이인자인 하만은 모르드게를 아주 미워하게 되고 결국 모르드게의 종족인 유대인들을 페르시아에서 모두다 멸절 시키려고 계략을 꾸몄고 왕을 잘 설득하여 왕의 허락을 받아내었다. 모르드게는 자신의 수양딸인 에스더가 왕후로 있으니 왕에게 나아가 하만의 악한 계획을 왕에게 이야기를 해서 자신과 자신의 민족을 구원해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란인 당시 페르시아 법은 왕이 왕후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법이었다.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누가 왕에게 나아간다면 그 사람은 왕후든 누구든 물문하고 죽음에 처하게 되어있었습니다. 에스더는 왕후라는 타이틀은 가지고 있었으나 왕 앞에 왕의 부름이 없이는 나아갈 수 없는 권리 조차도 없는 왕후였습니다. 그리고 에스더 1장에서 4장까지 묘사된 바사왕 아하수에르 왕을 보면 변덕스럽고 무심하고 예측이 불허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왕에게 마음대로 왕에게 나아갈 권리가 없는 왕후가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도 왕에게 나아가는 것은 마치 목숨을 걸고 도박하는 것 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더는 모르드게의 간청을 처음에는 거절했습니다. 왕에게 그냥 나아갔는데 왕이 기뻐하지 아니하면 에스더는 비록 왕후이지만 죽음을 당하게 되는데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그때 모르드게는 에스더에게 하나님께서 너를 왕비가 되게하신 것은 자신만을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멸절당할 위기를 미리 아시고 구원코자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때문이라고 말을했을때 에스더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순종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는 알지만 순종하기가 힘든 것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리스크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가져다줍니다. 헨리 블랙가비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데 오는 두려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결코 시키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자신의 경험을 보건데 하나님께서 주신 일들이 자신의 힘으로 감당 할 수 있는 것들은 장담하건데 거의 하나님께서 주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일들은 항상 “하나님의 수준” (God-sized) 이지 ‘나 수준”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일들은 항상 사람들이 감당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것을 통해 그가 누구시며 그의 능력, 그의 예비하심, 그리고 그의 백성들에 대한 그의 친절함, 그리고 세상을 돌보고 게신다는 것을 나타내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이것을 통해서만이 세상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게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쉬운일을 우리에게 시키지 않습니다. 도저히 할 수 없는 것 같은 일을 시키십니다. 그러므로 그 일은 나의 힘이 아닌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을 우리와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나타내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 일을 통해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알려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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