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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와 공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 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예레미야 22:3).


3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아 선지자를 통해 유다 왕과 백성들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정의”(히브리어로 미쉬파트)는 사법적 의미로서 재판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약자나 강자나 있는 지나 없는 자나 누구나 법 앞에서 공정하고 공정한 법으로 재판을 하는 것은 정의입니다. 돈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지 않고 법대로 하는 것, 그래서 무죄한 죄를 흘리지 않는 것이 정의입니다.


반면 “의” 혹은 ”공의”(히브리어로 체데크) 라는 단어는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른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가 되었을 때 우리는 의로운 자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노아도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함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6:9; 15:6). 그리고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로운 자로 인정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또한 공의는 공평과 공정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사회적 약자를 돌보시라고 명령하시듯이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것은 공의로운 행위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3절을 보면 유다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권력과 힘으로 약한자를 탈취하고 힘과 연줄과 돈이 없는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했고 학대했습니다. 재판을 구부러지게 했습니다.

이 모든 공의 롭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한 행동들은 9절에 “자기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긴 까닭 ”이라고 말씀합니다. 공의 롭지 못한 행동은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지 못하기 때문인 것을 지적합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정립되어 있다면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되어있고 하나님처럼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공의로운 행동을 하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만약 약한 이웃을 돌보는 마음이 없고 압제 당하는 이들에게 관심이 전혀 없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관계가 잘못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반면 하나님 말씀에 따라 약한자들을 돌본다면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다는 한 증거가 됩니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 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태복음 24:34-36,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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