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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변호자)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시니라” (욥기 16:19)


욥은 자신이 당한 재난과 고난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욥은 왜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 자에게 재난과 고난을 허락하시고 처참하게 만드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욥은 계속해서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땅아 내 피를 가리우지 말라” (18절)고 외칩니다. 이 말씀은 창세기 4:10의 아벨의 피가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다 라고 하는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억울한 피는 그 억울함이 해결될 때까지 계속적으로 부르짖는다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욥은 자신이 자신의 억울함을 해소될 때까지 계속적으로 부르짖겠다고 결심합니다 (18절).


그런데 욥은 누구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부르짖습니까? 욥의 “증인”과 “중보자”(변호자/advocate) 에게 부르짖습니다 (19절). 여기서 “증인”과 “중보자(변호자)”는 사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늘에 계시고” 또한 “높는데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분은 누구입니까? 욥은 지금 친구로부터 조롱을 당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20절) 이 증인과 변호자가 자신의 억울함을 해결해 줄 것인데 그는 이웃들 사이에서 판결하듯이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서 욥의 억울함을 증명해 줄 것입니다 (21절). 이러한 일을 하는 분이 바로 “증인”이고 “중보자”입니다. 이분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고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왜냐하면 “증인”과”중보자”(변호자)의 일은 이사야 2:4과 11:4의 메시아가 하는 역할과 동일하기 때문이고 또한 이 메시아의 역할을 말하기 위해 쓰인 יָכַח (야카하) 라는 히브리어 동사가 욥기 본문 21절에 똑같이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욥은 지금 메시아에 대해 아직은 선명하게 알지 못하고 희미하게 알고만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의 일을 구리 거울을 보는 것과 같이 흐릿하게 보듯이 말입니다 (고전 13:12).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메시아에 대한 분명한 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욥 자신은 이제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22절). 그러나 욥은 그때 자신을 변호해주고 자신의 증인이 되어 줄 메시아에 대한 신앙을 지금 고백하고 있습니다. 욥은 극심한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 원망도 하지만 그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결코 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고난이 계속되었지만 하나님께 계속해서 묻고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더 나아가 자신을 변호해줄 메시아(구원자)에 대한 신앙까지 나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변호자(중보자)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4:14절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큰 대 제사장”으로 표현합니다. 대제사장은 백성의 죄를 속하는 제사를 드리던 자가 아닙니까? 그래서 대제사장은 백성을 변호하고 중재하는 직책을 감당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히브리서 4:14-16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억울함과 연약함까지 변호하고 중재하시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만나든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기도로서) 담대히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히 4:16). 욥은 희미하게 이 메시아에 대해 알았지만 우리는 지금 분명하게 이 메시아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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