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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의 지향점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요한복음 3:30).


주의 일을 위한 사역자의자세와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


세례 요한이 요단강 가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요단강 건너 편에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고 있었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그것을 본 요한의 제자들은 요한을 찾아가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로 갑디다 라고 말했습니다(26절). 요한의 제자들은 시기가 난 것이었습니다.

그때 세례 요한은 그의 제자들에게 4가지를 말합니다: 1) 사람들이 예수께로 가는 바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다 (27절). 2) 세례 요한 자신은 주목을 받아야할 그리스도가 아니다 (28절). 3)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가 주목 받을 때 나는 가장 친한 친구의 결혼예식에 참석해서 기뻐하는 그 기쁨을 누린다 (29절). 4) 반드시 그리스도는 흥해야 하고 자신은 쇠해야만 한다 (30절). 30절의 헬라어를 직역하면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뜻입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사역의 목표는 자신이 존귀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높이는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역자의 사역의 목표와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는 내가 존귀케 되는 것이 아님을 본문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나의 사역을 통해 나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만 드러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우리 자신을 나타내려고 합니까? 주의 일을 하면서 내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얼마나 실망합니까? 진정한 영성이란 내가 나타나지 않아도 그리스도만 잘 나타난다면 그것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것을 힘이 없는 내가 우리 주님의 힘을 이용해서 내가 높아지고 성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자신의 삶에 어려움이 오면 믿음이 흔들리고 떨어집니다. 자신이 믿고 바라던 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십시오. 특히 히브리서 11장 마지막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순교하고 고난 당하는 수많은 성도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도행전 12장에서 옥에 갇힌 베드로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적적으로 풀려나왔지만 야고보는 헤롯왕에세 잡혀 참수를 당하지 않았습니까? 만약 예수 믿는 것이 힘이 없는 내가 힘있고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을 의지해서 그의 힘을 빌려 쓰는 정도로만 생각한다면 죽은 야고보는 설명되지 않고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사역자나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지향점은 나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가 높아지는 것이어야만 합니다. 야고보와 같이 힘없이 죽어갔더라도 그것을 통해 그리스도가 더 높이 드러나면 된 것입니다(사도행전 12:2). 베드로와 같이 기적을 경험 했어도 그것을 통해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면 된 것입니다(사도행전 12:4-12). 문제는 나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지 못하게 되고 멸시받게 되는 것을 걱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그러한 삶을 살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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