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복과 경제적 손실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이르되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 보내 주소서 하니 그들에게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마태복음 8:31,32)
예수님께서는 가라다 지방으로 가셔서 귀신이 들려 무덤 사이에 사는 사람을 만납니다. 예수님을 본 귀신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들임을 알아봅니다. 귀신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그 사람 가운데서 쫓아내실것을 알고 자신들을 돼지떼에게로 보내줄것을 강청하고 예수님은 귀신들을 돼지떼에게 들어가게 하심으로 그 사람을 고칩니다. 그러자 돼떼는 바다로 들어가 몰사하고 맙니다.
유명한 무신론자 버틀랜드 러셀은 “나는 왜 그리스찬이 아닌가” 란 책에서 ‘왜 예수님은 능력이 있으면서도왜 귀신들을 그냥 떠나가라고 말하지 않고 돼지떼에게 들어가라고 해서 불쌍한 돼지떼를 몰살시켯는가?’ 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돼지들에게 그리고 돼지 떼의 주인에게 몹쓸짓을 한것이라고 주장하며 예수님을 도덕적 문제가 있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그런데 만약 귀신 떼들이 그 지역에서 활동하며 모든 사람들에게 들어간다면 그 지역 자체가 큰 문제에 직면할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돼지 떼 주인에게 나중 보상해주지 않았다는 말도 없지만 보상해주엇다는 말도 기록되지 않아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모릅니다. 본문은 그 보상에 대한 관심이 주된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이 사건을 통해 출애굽 사건을 상기시켜줌으로 예수님은 우리의 새로운 구원자임을 말씀합니다. 출애굽때 홍해가 갈라지고 애굽의 정예군대가 홍해에서 몰살됨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종되었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듯이, 새 출애굽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하신 후(23-27절) 군대귀신이 들어간 돼지떼가 바다에 몰살되는 사건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를 사단의 종된데서 구원하시는 구원자이심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돼지 떼 보다도 한 영혼을 더 귀하게 보신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의 관심은 주로 경제적인 손실에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심은 한 사람이 사단의 손에서 해방되는 데 있습니다. 내가 사단의 손에서 해방된다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면 경제적인 손실이 무엇이 대단 하겠습니까? 이러한 믿음이 부족한 까닭에 예수님의 행동에 문제를 삼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영적인 복을 경제적인 이익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예수를 믿은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이미 주셨습니다 (에베소서 1:3). 돈에 최고다 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하고 돈 때문에 시험에들어 예수님을 의심하고 떠나는 삶에서 벗어나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