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기억하며 사는 삶

(죽음을 기억하며 사는 삶) 12/18/2016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전도서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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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7장 2절은 결국 ‘사람은 언젠가 죽는 다는 것을 생각하며 오늘의 삶을 살아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톨스토이가 그의 소설 “이반일리노치의 죽음”에서 말했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침내 죽게 될 존재임을 습관적으로 부인하며, 애써 죽음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어합니다.

‘죽음을 기억하며 살라’는 말은 어차피 죽을 것이니 삶을 하찮은 것으로 여겨라 는 말이 아닙니다. 주신 삶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그리고 진지하게 살아가게 만드는 적극적인 삶의 행위를 거부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사실, 미우라 아야꼬가 "삶에 답이 있을까?"에서 말했듯이, 산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 권리가 아니라 '의무'이며 '임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을 때 모두에게 귀한 사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녀가 말한 것 같이 "아무리 머리가 나쁘더라도, 팔과 다리가 없더라도, 아무리 이상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도, 잔인해도, 하나님께는 폐기물처럼 버려야 마땅한 인간이란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삶은 고귀함을 넘어 거룩한 것입니다.

에이든 토저 (A.W. Tozer)는 “영적인 사람"이라는 글에서 죽음에 대해 말하기를, "세상을 사랑하는 육신 적인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자기 심장을 마비시키는 공포로 여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성령 안에 거하며 사는 자는 이 세상에서의 연수에 점점 관심이 없어지게 되며 동시에 이 땅에 사는 동안 얼마나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살아야 할까? 에 관심이 더욱 커지게 된다"는 말을 덧붙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세상을 떠나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을 더욱더 원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고린도후서 5:8). 죽은 후에는 주님과 영원히 함께 하는 영광스러운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언젠가 주님을 만난다는 확신은 그로 하여금 주님이 기뻐하시는 바른 삶을 이 땅에서 살아가게 만들었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고린도후서 5: 9).

전도서나 에이든 토저나 사도 바울이 의미했던 바는,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삶은 얼마나 오래 살았나? 에 의해 결정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삶을 살았나? 에 의해 결정 지워진다는 말입니다. 삶의 길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무게에 있다는 말입니다. 무게있는 삶을 가능케하는 것은 우리는 언젠가 죽어 하나님 앞에 서게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죽음을 애써 부인하거나 그 생각에서 도피하는 삶을 살아갈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도 바울과 같이 죽음을 그리스도안에서 바라보며 주어진 하루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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