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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비 그리고 사랑과 순종

낭비 그리고 사랑과 순종)

아주 호전적인 부족인 에쿠아도르의 아우카 부족이 있었습니다. 아우카 부족은 아주 저항적이고 특히 복음에 대해 아주 저항적인 부족으로 알려졌습니다. 스페인의 탐험가들, 금광이나 석유 탐사가등, 그들의 손에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수는 수 없이 많았습니다.

1955년, 짐 엘리엇을 비롯한 네이트 세인트, 로쟈 유드리안, 에드 멕컬리, 피트 플레밍등 이 다섯명의 선교사들은 아우카 부족의 선교를 위해 경 비행기를 이용해 그들에게 날아가 3개월 동안 그들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섬물로 주고 또한 그 보답으로 그들로 부터 여러 답례품을 받으며 신뢰를 쌓아 갔습니다.

3개월이 지난 후 이들은 아우카 족의 땅에 첫 발을 내딧게 되엇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도착한 지 얼마 안된 1956년 1월 8일 다섯명의 선교사들은 모두 아우카 족들에게 살해 되었습니다. 특히, 짐 엘리엇은 명문 휘튼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고 장래 기독교계에 촉망을 받던 젊은이었습니다. 그는 이 선교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준비해 왔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준비한 모든 것을 다 쏟아 붙지 못한 채 생를 마감해야 했습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라이프"지는 이 사건을 표지와 10페이나 달하는 기사로 다루면서 "얼마나 불쌍한 낭비인가?" 라고 비아냥 거렸습니다.

그러나 이 다섯명의 선교사들이 순교를 한 후 36년이 지난 1992년 6월 11일, 아우카 족의 땅 와오라니 우림 지역의 외딴 마을 티네노에서 감격적인 신약성경 봉헌 예배가 드려졌습니다. 그 예배에 참석한 인디언 성도들 가운데 세명은 다섯 선교사들을 살해하는데 가담을 했던 사람들로 현재 와오라니 교회의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짐 엘리엇을 비롯한 네명의 선교사가 죽음은 아우카 족들이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고 많은 젊은 이들에게 이들을 향한 선교의 불을 지펴주었습니다. 이 다섯 선교사들이 순교한 후 짐 엘이엇의 아내였던 엘리자베스 엘리엇과 네이트 세인트의 여동생, 라헬 세인트 등은 남편과 오빠가 못다이룬 아우카 족에 대한 선교의 소망을 가슴에 품고 아우카 족들에게 다시 들어갔습니다. 이들의 피나는 헌신과 희생을 열매로 차츰 복음이 이들에게 들어가기 시작했고 결국 복음을 문이 이들에게 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다섯명의 선교사들이 그 땅에 뿌린 순교의 씨앗들이 그제서야 열매를 맻었습니다. 그들의 죽음은 낭비가 아니라 더 많은 열매를 맻기위해 땅에 심기어져 썩어진 한알의 밀알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 24).

이 세상에서의 인정만을 바라고, 이 세상 사람들 위에 군림하며, 지극히 개인적이어서 자신의 쾌락만을 위한 성공만을 추구하며, 그리고 조급함만을 가지고 있는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성령의 역사하심이 없이 인간의 생각과 지혜만으로 이 진리를 수용하고 이해하며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다섯 선교사들과 같이 이 진리로 인해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겠습니까?

제가 신학교때, 선교학 시간에 특별 강사로 초청되어서 온 엘리자베스 엘리엇을 만나본 적이 있습니다. 몇년전 소천하셨는데 이분은 순종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짐과 함께 죽은 이들을 영웅으로, 순교자로 칭송했습니다. 나는 찬동하지 않습니다. 본인들도 찬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과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 일이 그토록 다르다는 말입니까? 후자는 전자의 당연한 귀결이 아니겠습니까?"

짐 엘리엇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순종하면 그 분을 알며 순종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다. 순종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한다는 뜻이다. 그 분안에 거한다면 우리도 예수님이 행하는 대로 행하게된다."

짐 엘리엇과 네명의 선교사들의 삶은 공명심에 의한 것도 아니었고 "낭비"도 아니었습니다. 많은 열매를 맻기위해 "한알 의 썩어지는 밀"이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주님을 사랑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순종"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의 사랑을 바로 알고 사랑하게 된다면 그 사랑이 우리의 삶 가운데 자연스럽게 순종의 삶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순종은 사랑의 자연스러운 결과 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5: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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