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는 마음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히브리서 11:4).


본문은 아담과 하와의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고 말씀합니다. 아벨은 양을 치는 목축업을 했기 때문에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고 가인은 농사일을 했기 때문에 자기 땅에서 난 곡식으로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의로운자라 하시는 증거를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증거를 받았다”는 ‘인정함을 받았다”고 번역을 할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고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앗을까요? 창세기 4장을 보면 아벨은 자신의 것들 중 선택해서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자세와 태도를 말씀합니다. 아벨은 하나님은 나의 가장 최선의 것을 받으실 자격이 있으신 분이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반면 가인의 행동은 단순한 종교인의 행동이었습니다. 그냥 자신의 것 얼마를 주님께 드렸습니다. 드리지 않으면 안되겠고 해서 얼마를 그냥 드린 것입니다. 종교인의 모습입니다. 가인에게도 돌이킬 기회가 주어졌지만 돌이키지 않습니다 (창 4:6,7). 제물이 어떠한 것이냐, 많으냐 적으냐 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마음 중심의 문제입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오래전 미국에서 학생들이 백악관 초청되어갈 때 학생들의 복장에 대해 뉴스에서 문제를 삼은 적이 있습니다. 백악관에 여러가지 이유로 해서 초청되어 가는 학생들 중에 샌들을 신고 가는 학생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예의냐? 하는 문제로 TV 고 신문이고 뉴스로 방영한 적이 있었습니다.여름에 샌들 신고 다니는 것은 미국 문화의 한 면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니면 이러한 행동은 정말 한 나라 대통령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무시하는 태도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여기서 문제를 삶은 것은 샌달을 신은 학생들의 미국 대통령을 향한 속 마음의 태도입니다. 정말 대통령에게 갖추어야할 예의를 갖춘다면 샌들을 신을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문제는 대통령에 대한 속 마음의 자세와 태도에 대해 의심을 하는 것입니다. 겉으로 나타난 태도는 속마음의 태도와 관계가 있습니다.

아벨과 가인의 문제도 제물이 어떤 제물인가? 많은가 적은가? 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그 마음의 자세와 태도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속 마음을 알수가 없어서 백악관에 대통령을 만나로 간 학생들의 진정한 속 마음과 동기를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추측 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속 마음까지, 그 동기까지 꿰뚫어 보고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내 예배를 받으시고 계신다면, 그리고 내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내가 예배를 드리는 마음의 자세가 바른가? 하는 문제입니다.


마음이있으면행동이자연스레따라옵니다. 마음이없는데체면을생각해서행동하니믿음의행동이아닌종교적이되는것입니다. 믿음이없다면믿음없는것을마음아프게여기면서믿음을달라고기도해야합니다. 귀신들린아이의아버지처럼말입니다 (막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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