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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삽시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밖혀 죽으신 금요일입니다. 이 날,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좀더 경건한 하루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오늘 큐티 말씀은 마가복음 15:16-32 까지 말씀인데 예수님의 십자가에 초점을 맞추어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제사장과 종교 지도자들에 예수님을 당시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로마 총독인 빌라도에게 넘겨주었고 백성의 요구대로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합니다.

1.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을 모욕하고 조롱했습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을 “브라이도리온” 이라는 뜰 안으로 끌고 갔습니다. “브라이도리온” 이라는 것은 본부대라는 뜻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처형하기 전에 예수님에게 장난질하며 예수님을 모욕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할 때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었을 때 “그렇다 ”고 대답한 것을 기억하고 예수님을 가짜왕으로 조롱하기 위해 왕 같이 꾸몄습니다.

당시 왕들은 신분의 표시로 자주색 옷을 입었습니다. 그래서 군병들은 자기들이 걸치는 붉은색이 많이 들어간 자주색 망토를 예수님에게 입혔습니다. 그리고 왕들은 황금 잎으로 정교하게 장식된 왕관을 쓰는데 그것을 흉내내서 구부리기 좋고 가시가 돋아나 있는 “나부크”라는 식물줄기를 이용하여 가시 면류관을 만들어 예수님의 머리에 눌러 씌웠습니다. 이로 인해 가시에 찔린 이마와 머리로부터 피가 흘러나왔습니다. 이렇게 가짜왕의 모습을 만들어 놓고 군병들은 킬킬대며 신하들이 왕에게 절하듯이 예수님 앞에 절하며 발에 입을 맟추는 시늉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 찌어다”라고 킬킬대며 왕에게 문안을 드리는 시늉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19절에보면 갈대로 예수님의 머리를 쳤다고 말합니다. 갈대는 왕이 손에 쥐고 있었던 지팡이(홀)을 본떠 예수님의 손에 들려 주었습니다. 그것은 왕의 상징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군병들은 갈대로 홀을 만들어 예수님의 손에 쥐어 주었다가 빼앗아 그것으로 예수님의 마리를 치며 “네가 무슨 유대인의 왕이냐” 라고 조롱하며 침 뱉으며 예수님에게 꿇어 절했습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을 모욕하고 조롱하고 있었고 예수님은 그 모욕과 조롱을 묵묵히 당하고 계셨습니다.

2. 사람들은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 삼시”에 십자가에 못 밖혔습니다. 이는 유대 시간으로 아침 9시를 말합니다 (25절). 예수님의 죄패에는 “유대인의 왕” 이라고 썼습니다(26절). 자칭 유대인의 왕으로 자처한 것이 죄라는 것이고 그것을 조롱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강도 둘과 함께 십자가 형을 당했다(27절). 예수님은 강도와 같은 흉학한 죄인으로 형벌을 받고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무력하게 십자가에 달려있는 예수님을 향해 조롱했습니다. 성전을 사흘만에 짖는 자라고 조롱했습니다 (29절).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초기와 말기에 예루살렘 성전을 정결케 한 사건이 있었는데 여기서 사람들이 조롱하는 것은 초기의 성전 청결 때 예수님께서 한 말을 상기하며 조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 2:19).

그러나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이제 돌로지은 물질적인 성전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지어지는 영적인 성전을 말한 것 입니다. 역사적으로 성전은 3개가 있었습니다. 솔로몬 왕이 지은 솔로몬 성전, 그리고 바벨론 포로 후 무너진 솔로몬 성전위에 지은 스룹바벨 성전, 그리고 헤롯 왕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지은 헤롯 성전, 이 모든 성전들은 다 파괴되어버렸습니다. 살아있는 예배가 없고 사람들의 죄악과 탐심으로 가득찬 사람이 돌로 만든 성전은 아무리 화려해도 이렇게 파괴 되어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으로 인해 사람의 손으로 파괴될 수 없는 영원하고 견고한 성전을 만드시는데 그것은 믿는 성도들의 공동체인 성전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교회”라고 일컫습니다.

성전이 거룩한 이유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믿는 사람의 모임인 교회는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고(하나님의 임재) 그러므로 성전이 됩니다 (고전 3:16; 6:19). 이 성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위에 건축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거하시려고 지금 예수님께서는 기꺼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새로운 영적인 성전을 건축하고 있는 중이십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알지못했고 그러므로 예수님을 성전문제로 조롱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우리 벧엘 교회 성도들 위에 지어진 성전은 예수님의 피 값으로 지어진 고귀한 공동체이며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거룩한 공동체임을 기억해야할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는 사람이 지은 건물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지만 있는 각자가 있는 곳에서 마음을 모아 하나님께 진정으로 예배할 때 성령께서 시 공간을 넘어 우리를 하나로 묶어 주시며 우리가 드리는 예배 가운데 임재 하셔서 우리의 예배를 받아 주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향해 사람 당신이 만약 정말 그리스도(구원자)라면 그 십자가에서 당장 내려와 자신을 먼저 구원해 그 능력을 보여 그리스도임을 증명해 보라고 조롱했습니다(30절). 만약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려오셨다면 예수님을 조롱하고 모욕한 자들은 살아남았겠습니까? 우리의 구원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조롱과 멸시를 기꺼이 받는 이유는 우리가 우리의 죄로 인해 받을 멸시와 조롱과 형벌을 대신 받으시기 원했기 때문입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을 조롱하고 모욕한후 “골고다” 라는 곳에 십자가를 지우고 끌고가서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로마시대때 십자가형은 죄수가 불에 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면서 서서히 죽어가도록 고안된 것입니다. 십자가형은 죽어가면서 독수리들이 날아와 기절해 있는 죄수의 살과 눈들을 파먹습니다. 십자가의 죄수들은 대부분 미쳐서 발광하면서 죽어갔다고 합니다.

십자가에 형이 너무나 극심한 고통이 따랐기 때문에 군병들은 고통을 조금 경감 시키기 위해 포도주에 몰약이라는 향을 가미해 죄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은 그것을 거부합니다 (23절). 하나님께서 주신 고통을 온전히 받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우리 죄로 인해 받을 고통을 온전히 대신해 받기 위함입니다!

3. 7백년전에 선지자 이사야는 이 예수님을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man of sorrow)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 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 하였도다” (이사야 53:3-7).

그리고 이사야 53: 24, 25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고 예언했습니다.

이것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23에 이렇게 말합니다.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예수님이 조롱과 모욕 그리고 십자가의 형벌을 우리 위해 묵묵히 당하신 결과로 우리는 나중 부끄러움을 당치 않게 됩니다. 우리가 나중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우리가 사는 동안 저지른 모든 비밀스러운 죄악들이 다 드러날 때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그리고 그 죄악에 대한 지옥의 형벌이 내려진다면 얼마나 비통에 빠지겠습니까? 주님의 심판대 앞에 우리가 섰을 때 사단은 우리를 하나님께 살면서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드러내어 정죄할 것입니다. 모욕하고 조롱할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예수를 믿는 성도들을 변호하며 사단을 향해 이렇게 말씀할 것입니다. “이들의 모든 죄에 대한 값은 내가 이미 골고다 십자가에서 이미 다 받았노라! 더 이상 나의 사람들을 정죄하지 말찌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은 비록 연약하고 죄악 된 사람 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사도 바울이 외쳤던 외침이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서 터져 나오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로마서 8: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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