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하게 믿음의 삶을 삽시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마가복음 14:42)
우리가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비굴하지 않고 환경에 짓눌리지 않고 당당하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믿음으로 걸어갈 수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큐티 본문 말씀 마가복음 14:43-51을 보면, 예수님께서 주어진 고난과 십자가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는 심히 고민하여 마음이 죽을 상태만큼 힘들 때(34절) 간절히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36절).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우리 죄를 대신해 죽는 것임을 다시한번 확인 한 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42절).
예수님께서는 제자인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 것임을 알았습니다. 가룟유다가 종교지도자들이 보낸 사람들을 이끌고 자신을 잡으러 올 것을 알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잡으러 함께 가는 무리들에게 자신이 입을 맞추는 이가 바로 예수님이니 그때 그를 잡으라고 미리 이야기해 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길로 피해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잡으러 온 자들을 향해 당당하게 걸어 갑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과 입을 맞추고 칼과 몽둥이로 중무장한 무리들은 예수님을 잡으려할 때 곁에 있던 제자 한 명이었던 베드로가 (요한복음 18:8) 사람들이 예수님을 잡아가지 못하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칼로 예수님을 잡으러 온 제사장의 종의 귀를 베어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성전에서 날마다 성경을 가르칠 때에도 자신을 잡아갈 시간이 있었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잡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렇게 하는 것은 “성경을 이루려 함이라”(49절)고 말씀하시며 순순히 잡혀 가는 길을 택합니다. 이사야서 52:13-53:12의 고난 받는 메시아를 예언한 말씀들을 말씀한 것이었습니다. 지금이 바로 고난과 죽음의 때임을 예수님께서는 아셨고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다 예수님을 버려 두고 도망 갑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과 죽음을 앞에 둔 지극히 위험하고 불안한 상황 가운데서도 어떻게 비굴하지 않고 환경에 짓눌려 환경에 휘둘리는 삶을 살지 않고 담대한 믿음의 삶을 살수 있었을까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확인한 후 그 뜻에 순종하기로 결심 하셨기 때문입니다.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비굴해지지도 않는 당당한 믿음의 삶은 기도로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하려는 마음에서 옵니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불확실하고 불안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1948년도 세계는 원자폭탄 발명하고 함께 원자폭탄의 두려움이 사람들을 떨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상황과 비슷했습니다. 그때 위대한 기독교 변증학자이자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였던 C. S. 루이스는 “On Living in an Atomic Age”(원자 폭탄 시대에 살면서) 라는 글에서 죽음의 위협은 심각하지만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니 공황상태에 빠지지 말 것을 권면합니다. 원자폭탄 외에도 전쟁과 기근과 역병 등, 역사 이래로 삶을 위협하는 것들이 수 없이 있어왔다고 말합니다. 삶에 대한 위협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두려움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고 우리 마음을 마비 시키는 것을 허용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웃고 봉사하며 주어진 삶을 기쁘게 살아가야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하늘의 보좌에서 우리를 다스리고 계심을 알기 때문에 두려움의 노예가 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시에 하루 한끼 먹기도 힘든 삶을 사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마태복음 6:25-34).
불확실한 삶이 주는 두려움의 노예가 되지 말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의 삶을 돌보신다는 것을 믿고 주어진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언젠가 죽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결국 우릴 주님 곁으로 인도해 이 땅을 다스리게 하실 것이며 (요한계시록 20:6), 영원한 새 하늘과 새 예루살렘(천국)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1-4).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운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돌보심의 약속과, 왕으로서 이 땅을 다스리게 될 것이며, 결국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과 계획과 뜻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에 순종하여 말씀을 붙들고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하루의 삶을 믿음으로 힘차게 살아가야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구약 이사야서 말씀을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뜻인, 고난을 받고 죽어야 한다는 것을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 한 후, 그 말씀에 순종해서 주어진 고난과 십자가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신 것 같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