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June 27, 2016

 

오늘날의 세상은 말의 시대입니다. 말로서 나 자신을 정확하게 표현 할 줄 알아야합니다. 그래야만 상대방은 나의 의중을 바로 파악할 수 있고 서로간에 오해가 없이 의사소통이 됩니다. 그러므로 말은 우리의 삶 자체입니다.

그러나 말을 많이 하다보면 자신을 부풀리게 되고 거짓으로 자신을 어느새 감추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은 말의 뒤끝은 언제나 씁쓸하고 공허합니다. 설익은 생각의 말들을 쏟아내고 난후에는 아무 유익도 끼치지 못하고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없는 쓸데없는 말만 너무 많이 했다는 자괴감이 언제나 밀려옵니다. 그러한 말들은 사람의 마음속이나 생각 속에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귓전에만 언제나 윙윙거리고  돌아다니고 있어 사실은 사람을 괴롭히는 소음에 불과할 뿐입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잠언 25: 11).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난 후, 싱싱한 사과를 한입 베어먹은 것처럼 상쾌함을 느끼게 되는 말이 있고 썩은 사과의 한 부분을 베어먹은 듯이 토해내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전기 줄에 앉아있던 새들이 날아갔을 때에도 그 줄의 진동은 계속 되듯이 우리의 말이 끝나고 난 뒤에도 그 말이 주는 느낌의 진동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한동안 머물러 있게됩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생각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충분히 무르익힌 다음 잘 익은 말만을 꺼내어 놓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생각 없이 지킬 수 없는 약속만 수 없이 남발하는 공허한 말의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한 마디라도 사람에게 진정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그러한 신뢰감이 있는 말의 사람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침묵을 배우고 싶습니다.

 

진정한 침묵은 말의 침묵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침묵은 나의 의지의 침묵에서 시작됩니다. 자신이 무엇을 말 하고자하는 욕망이 있을지라도 ‘이 말이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말인가?’를 생각함으로 인해 자신의 의지를 꺾는 것을 말합니다. 주의 말씀에 순종을 통한 침묵입니다. 사실은 말을 침묵하는 자체가 힘든 것이 아니라 말을 하고자하는 의지를 절제하는 침묵이 힘든 것입니다. 이 의지의 침묵의 과정을 통해 꼭 필요한 합당한 말들이 여과기를 통해 걸러지듯 걸러져 나옵니다. 이 의지의 침묵을 통해 비로서 경우에 합당한 말들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진정한 침묵은 나의 실천적 삶을 통해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왜 힘이 있었을까요?  예수님의 말솜씨의 뛰어남 때문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권세로 말씀하신 까닭입니다만, 동시에 당신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는 공생애를 사신 실천가였기 때문입니다.성인(Saint)은 말없이 가르침을 베푼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식이 아닌 실천적인 행동에 영향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한편, 실천이 없는 말은 아무런 영향력을 줄 수 없습니다.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는 의미 없는 소리만 끊임없이 던져줄 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실천한 만큼만 혹은 분명하게 실천할 것만을 말 해야 합니다. 실천하지 못하고 또한 할 수 없는 말에 대한 침묵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공허한 말만 내 뱉는 것이 아니라 침묵의 과정을 통해 나의 생각을 숙성시키기를 원합니다. 그런다음 그 숙성된 말을 꺼내어 실천적 행동을 거쳐서 전달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한마디의 말을 하더라도 되돌아오지 않는 무게 있는 말의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말에 있어서도 예수님을 닮아가는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나는 살아가고 싶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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