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한줄기 빛, 격려

한마디의 격려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서게 만들며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목회학 석사를 공부할 때 첫 설교학 과목을 들을 때였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의 설교학 클래스는 언제나 마지막에 설교 노트를 보지 않고 학생들과 교수님 앞에서 설교 한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저에게는 영어로 설교 노트를 보지 않고 설교하는 일이 여간 힘든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클라스에서 강의를 듣던 다른 유일한 동양인 이었던 한국에서 온 한 유학생 전도사님과 저는 나름대로 열심히 설교 준비를 했습니다.

학생들이 설교를 할 때면 비디오 테이프로 녹화를 하는데 그 녹화 중간 중간에 교수님은 잘된 부분과 잘못된 부분을 코멘트를 합니다. 나중 학생이 교수님의 코멘트가 담긴 자신의 설교 비디오를 보면서 자신의 설교를 점검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설교가 끝이 나면 설교에 대한 평가를 학생들로 하여금 하게 만들고 마지막으로 교수님이 설교에 대한 최종 평가를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 클래스는 해든 로빈슨 (Haddon W. Robinson)이라는 교수님이 가르쳤었는데 그분이 저의 설교에 대한 평가의 첫마디가 이것이었습니다. "설교의 예화가 너무 부정적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화를 사용할 때 저와 다른 한국 학생 모두가 다 부정적인 예화를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교수님 자신은 한국교회에서 한국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은 경험은 많지는 않았지만 본인이 들어본 한국 목사님들의 설교의 예화들이 대체로 부정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하는 말이 부정적인 예화의 문제는 그 예화를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변화로 이르도록 만들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오히려 긍정적인 예를 보여줄 때 자신의 잘못된 지점으로부터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을 알게 만들어 잘못으로부터 돌아서도록 격려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교수님이 한 말이 저에게는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저의 정서도 그렇고 그 당시 제가 알고 있던 한국 사람들의 정서도 부정적 경향이었던 기억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그 때 사용했던 예화는 한 사람의 실패한 경험을 이야기한 것이었습니다. 그 실패의 경험을 들려줌을 통해 사람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경각심을 주어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한 의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의도를 성취하는 데 있어서 부정적인 예보다 긍정적인 예가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비판의 말은 사실 쉽습니다. 비판에 자연적인 우리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다 쏟아내면 되니까요. 그러나 긍정적인 격려의 말을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솓아나오는 가시돋힌 비판의 감정과 의지의 절제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말을 듣고 어떠한 마음을 가지게 될 지에 대한 상대방에 대한 배려의 마음도 필요합니다. 그 말을 들은 상대방에게 미칠 삶의 영향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안목도 필요합니다.

남을 비판하는 말은 별 깊은 생각이 없이도 쉽게 할 수 있지만 남을 배려하고 격려하는 말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에 대한 절제와 상대에 대한 배려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요나단이 그의 친구 다윗에게 한 말을 보면 격려의 말의 중요성에 대해 보게됩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호레스로 다윗을 찾아와서,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도록 격려하였다" (사무엘상 23:16: 표준 새 번역).

요나단이 다윗을 찾아와 격려한 때는 다윗이 그일라 사람들로 부터 배신을 당한 후 이었습니다. 블레셋이 그일라를 침입을 해서 그들을 괴롭히고 있을 때 다윗은 목숨을 걸고 그들을 지켜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일라 사람들이 오히려 다윗을 그를 죽이려는 사울에게 넘겨주려고 했던, 은혜를 악으로 갚으려 했던 때였습니다. 또한 요나단이 다윗을 찾아 격려한 때는 다윗과 같은 부족 사람들인 십 사람들이 다윗을 감싸주기는커녕,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에게 넘겨주려고 모의하기 바로 직전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요나단이 다윗을 찾아와 격려했을 때에는 다윗이 믿었던 사람들로부터의 배신으로 인해 극심한 상실감과 허탈감에 빠져있을 때였고 또 다른 배신으로 인한 허탈감과 상실감이 곧 닥쳐올 시기였습니다. 심령의 힘을 다 소진해 버린 채, 계속적으로 밀려오는 극심한 어두움 가운데서서 힘겹게 삶을 위해 투쟁하던 때였습니다.

만약 요나단의 격려가 그때에 없었더라면 다윗이 어떻게 그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연거부 닥친 그 배신의 쓰라림의 상처를 딛고 일어설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그가 하나님의 택하신 왕으로 설 수 있었겠으며, 그가 구약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형 (foreshadow)이 될 수 있었겠으며, 그의 자손을 통해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대로 구원자와 우리 삶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이 탄생할 수 있었겠습니까?

요나단의 격려의 말 한마디는 다윗에게 힘을 주어 다시 일어서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다윗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려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한 것이었으며, 결국 하나님을 대신해 다윗을 격려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을 세우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은, 비판의 말을 통해 사람을 끌어내리고 자각시키는 부정적인 방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격려를 통해 나아갈 길을 보여 주는 긍정적인 방법을 통해서 입니다. 그때 그 듣는 사람은 자신의 잘못과 함께 나아갈 바른 방향을 보고 일어서 나아가게 되는 힘을 얻게되는 것입니다.

칠흙같이 어두운 산길에서 길을 잃었을 때 한줄기의 빛이 그 사람에게는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가로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시골의 밤거리에서, 그나마 사람들 모두다 잠이 들어 불빛 한줄기도 새어나오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두움의 시골의 밤길에서는, 비추는 한줄기의 달빛이, 희미한 별빛들이, 얼마나 길을 밝혀주는지를 칠흑같은 시골 밤길을 걸어가 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이와 같이 절망의 어두움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던지는 한 마디의 격려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시 일어나 걸어가도록 해주는 한 줄기의 불빛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빛이 되는 것입니다.

길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터덜거리며 걸어간 길 끝에

멀리서 밝혀 오는 불빛의 따스함을

막무가내의 어두움 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있다는 것이

인간에 대한 얼마나 새로운 발견인지

산 속에서 밤을 맞아본 사람은 알리라

그 산에 갇힌 작은 지붕들이

거대한 산줄기보다

얼마나 큰 힘으로 어깨를 감싸주는지

먼 곳의 불빛은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을

(나 덕희/ 산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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