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의 여정

지난 2007년은 한국에서 1907년에 일어난 “평양 대부흥” 100주년 되는 때이었습니다. 그래서 2007년을 맞이하는 당시 한국 교회는 이 땅에 다시한번 100년전의 부흥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들떠있었고 세미나와 부흥회들을 준비하고 개최했었습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가 기대하고 생각하는 부흥은 한국땅에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한국 교회가 생각했던 부흥이 과연 성경이 말하는 순수한 부흥이었을까?를 일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생각해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부흥을 의식적이든지 무의식적이든지 세상의 가치와 연관해서 생각하는 경향이있습니다. 하나의 예로 이런 것입니다. 즉 부흥은 “숫자가 많아 지는 것이다” 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래서 열심을 내어서 교회에 성도의 숫자가 많아지면 ‘부흥했다’고 자찬을 하고 자기 만족에 빠집니다.

그러나 “부흥의 여정” 이라는 책은 이러한 부흥에 대한 우리의 생각들을 다시한번 재고하게 만듭니다. 이책은 한국 교회가 100년 평양 대부흥을 2007년에 다시한번 이 땅에 이루어 지기를 기대하던 1년 전 2006년 4월에 초판 발행이 되었습니다. 이 책은 저자 김우현 PD가 부흥에 대한 타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영국 아일랜드, 미국, 북한을 비롯한 중국까지 방문하며 여러사람들을 만나고 거기에 대한 여러가지 책들과 자료들의 검토를 통해 발견한 부흥에 대한 역사적 발자취를 담은 책이며 이에대한 자신의 결론을 담은 책입니다.

그는 이 다큐멘터리 제작을 통해 자신이 지금까지 성령님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 가를 깨닫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이 아무리 열심을 내어도 “성령님의 존재를 알지 못하면, 그분의 영감과 임재와 역사를 체험하지 못하면 그것은 결국 자기 열심과 의에 지나지 않습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이 다큐멘터리 제작을 통해 부흥의 역사는 결국 성령의 역사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하나님의 본질적 세계로 나를 인도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다. 결국 부흥은 성령을 아는 것이요 그분과 동역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흥을 어떤 성령의 은사나 체험과 동일시 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오히려 부흥은 잠자는 영혼을 성령께서 일깨워 가장 미천한곳 그리고 땅끝까지 가서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고 증거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부흥은, 성령의 임재는 어떤 은사나 체험이 아니라 그것은 하늘의 사랑이 이땅을 적시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결국, 성령님께서는 주시는 “부흥은 자기 안일과 자기 만족에 빠진 영혼들을 일깨워 ‘미말’ (고전 4:9) 즉, 가장 낯은 세상 끝으로 (사랑을 가지고) 가게한다. 예수가 그렇게 가셨듯이”라고 고백합니다.

그가 발견한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시작되는 이땅에서의 부흥의 역사는 다음과 같이 요약 될 수 있습니다.

1. 복음은 가장 낮은 자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에브라다 코드”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하며 쓰여진 미가서 5:2절의 “에브라다”는 “작고, 보잘것 없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풍경”을 가르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1859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우스터에서 일어난 부흥은 천대 받던 한 흑인 원주민 하녀의 찬양과 기도롤 부터 시작되었고 1904년에 일어난 영국 웨일즈 부흥도 보잘것 없는 광부인 이반 로버츠를 통해서 이루러졌습니다. 1905년에 일어난 인도의 영적 부흥도 라마바이 라는 과부를 통해 일어났으며 1906년에 일어난 미국 로스엔젤러스의 아주사 부흥도 당시 사회에서 가장 미천한 노예신분이었던 애꾸는 흑인 W.J. 씨모어를 통해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부흥은 세상에서 낮은자를 통해 이루어 졌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자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2. 부흥은 앞으로 닥칠 큰 환란을 앞두고 그땅에 있는 그의 백성을 위로하고 준비시키시기 위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1906년 일어났던 미국 아주사 거리의 부흥은 4년 후에 있을 샌프란 시스코 대진진에 대비해 일어났습니다. 1907년에 일어났던 한국 평양 대부흥은 한 민족의 최대의 위기가 몰려오던 직전에 주어졌습니다. 이 부흥 이후로 한국 에는 동학란이 일어났고 청일 전쟁, 러일 전쟁 그리고 고종 황제의 폐위와 일제 강점 사건이 일어나는 등 한 민족에게는 강당키 어려운 일들이 일어낫던 것입니다. 1960년 캄보디아에서 일어난 부흥은 그 후 캄보디아에서 일어날 크메르 루즈군에 의한 대학살 직전에 주어졌습니다. 이 크메르 루즈군으로 인해 캄보디아 그리스도인 90%가 죽임을 당합니다.

결국 역사의 기록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주신 부흥은 그의 백성을 위로하고 암흑기를 견디어 낼 만한 영적 준비를 시키기 위함이었음을 이 책은 이야기합니다.

또한 1859년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부흥은 시골 마을 기도회에서 부흥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부흥은 웨일즈 스코틀랜드로 번져 갔습니다. 이 1859년은 영국땅에 나타날 영적 침체에 대비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해 다윈은 창조론을 뒤엎는 “종의 기원”을 발표하고 신학계에서도 성경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고등 비평이 나옵니다. 마르크스는 “정치 경제학 비판”을 발표합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하나님 보다 자기 삶의 유익을 가장 우선시하는 경항의 사상인 실용주의 뿌리가 되는 “자유론”을 발표합니다.

이러한 영적인 암흑기에 대항해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부흥을 허락하시어 영적 각성을 통해 그의 백성을 위로하시고 준비시켰던 것입니다.

3. 부흥이란 사랑과 애통하는 심령을 통해서 온다는 것입니다.

한국 최초의 선교사로서 대동강변에서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는 중국에서 아내를 잃는 고통 가운데 한국으로 선교사로 가게되고 대동강변에서 성경을 던지고 순교합니다. 그 성경을 전해 받았던 사람 중 하나인 이영태는 그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어 숭실학교를 졸업하고 나중 전도사가되어 레이놀즈 선교사가 한글로 성경 2/3를 번역할 때 큰 도움을 줍니다. 그리고 그 성경으로 평양 감영 경비였던 박영식은 자신의 집 벽에 도배를 했는데 그 집이 이후에 평양 최초의 교회인 널다리골 교회가 되고 이 교회는 평양 장대현 교회가 됩니다. 이 교회에서 1907년 1월 14일 일어난 평양 대부흥이 일어납니다.

최초로 한글을 번역한 카나다 출신 존 로스 선교사는 조선 선교를 위해 사역지를 조선에 가까운 영구로 옮기는 데 그 과정에서 아내를 잃고맙니다. 영하 25도가 넘는 혹한의 날씨 속에서 로스 부인은 임신 마지막달의 긴 여행으로 인해 몸이 약해져서 아들을 낳고 세상을 떠나고맙니다. 이 아내를 잃은 극한 슬픔을 안고 그는 한국 선교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의 사역은 서상륜, 서경조 형제로 이어지게되고 이들을 통해 한국 최초의 교회인 소래교회가 세워지게 됩니다.

토마스 선교사보다 30년 전에 조선땅에 복음을 전하러 온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독일 출신 귀츨라프 입니다. 그 역시 아내를 잃고 중국에서 선교하다가 위험하다고 꺼리는 조선땅에 복음을 전하러와서 충난 서산의 고대도에 도착해서 성경을 전하고자했으나 외세를 강하게 배척하는 당시 조선인들의 반대에 부딪혀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애통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랑과 애통의 마음이 이 땅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 아들을 죽기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의 애통하는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고 결국 하나님의 애통과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이 땅에 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몽골은 2000년 이전에는 복음에 대한 문이 단단히 잠겨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 여름 몽골을 영적으로 지배하는 라마교의 본산지 아르항가에 큰 태풍이 일어나 교회 지붕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이 교회 지붕을 수리하다가 김성호 선교사가 감전되어 순교합니다. 그 이후 갑자기 몽골에 복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해서 몽고에 있는 한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대부분 학생은 2000년 이후에 예수를 믿음 청년들이었습니다. 김성호 선교사의 죽음으로 인한 애통이 있었고 이로인해 척박한 몽골땅에 부흥이 찾아옵니다.

한 죽어가는 영혼을 향한 “사랑의 애통이 부흥의 길” 인 것임을 김우현 PD는 발견합니다.

이는 바돌로매 지에젠발이 말한 것 처럼 “하나님이 상처입고 고통당하는 당신의 증인들을 통해 그의 위대한 사역을 진행시키는 것은 그분의 가장큰 신비중의 하나”입니다.

4. 부흥이란 상한 심령을 통해서 온다는 것입니다.

1903년 8월 24일부터 한국 원산에서 열린 기도회를 통해 부흥이 일어나고 그로부터 4년후 한국 전교회에 놀라운 부흥의 불길이 일어납니다.

이 기도회에서 하디 선교사는 성령의 역사로 자신의 죄악들을 선교사들과 한국인 성도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회개합니다. 이 회개로 시작해서 죄에 대해 무감각하고 회개에 대해 알지도 못하던 한국 성도들을 회개하게 만들고 성령으로 채움을 받게 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자신의 죄와 영적인 처참한 자신들의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보게되고 상한 심령이 되는데 그때 성령에 의한 강권적인 회개의 역사와 함께 부흥의 시작이 됩니다. 이 부흥이 1907년에 일어난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일어난 대 부흥입니다.

1907년 1월 6일 전국에서 몰려든 약 1천명의 성도들이 평양 장대현 교회에 모여 부흥을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냉냉하고 차가운 기운만 교회당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영적인 싸움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낙망치 않고 1월 14일 다시모여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성령의 임재하심의 역사를 간절히 간구하자 그날 밤,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 역사를 하셨습니다. 성령의 강권하심으로 그들은 한사람씩 자리에 일어나 자기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기 시작했고 성령의 임재하심 이들 가운데 강력하게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영적인 파산 상태를 성령의 도우심으로 목도하게되고 회개하며 상한 심령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게되는 그것이 곧 부흥인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면서도 말씀과 기도보다 은연중에 비지니스 방법론을 더 연구하고 의지함으로 성령보다 세상의 방법론을 더 신뢰하는 이 세대에, 낮아짐과 깨어짐과 애통함이 학력과 재력과 개인의 능력으로 대치된 이 세대에, 이 세상을 더 이상 의지할 수 없을정도로 낮아지고 깨어져서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에게서만 위로함을 받기를 원하는 상한 심령을 통해 이루어지는 진정한 부흥이 이 땅에 그리고 우리 교회에 일어나기를 새해 첫주에 소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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