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생각, 나의 생각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요나 4:2)


요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적국이자 아주 악한 민족인 앗수루 수도 니느웨에 가서 회개하라고 외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도망갔다가 바다에 빠져 큰 물고기가 그를 삼킵니다. 다행히 요나는 그 속에서도 죽지 않고 회개하고 물고기는 요나를 토해 냅니다. 그래서 요나는 다시 니느웨에가서 회개하라고 외칩니다. 이 회개를 본 하나님은 니느웨를 용서하시고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을 요나는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투정을 하면서 기도를 합니다. 2절에서 요나가 기도하면서 이야기한 하나님에 대한 묘사는 구약성경 곳곳에서 발견되는 신앙 고백의 표준이었습니다. 다른 말로하자면 요나는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 신학적으로 매우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앗수르 백성과 같은 악한 사람들이 회개했다고 살려 주신다면 저는 더이상 선지자 노릇 할 이유가 없습니다. 악한자들은 무조건 용서해줌으로 공의를 행하시지 않는 하나님의 선지자 노릇을 더 이상 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저를 죽여주십시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자한 말로 ”네가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라고 요나를 타이릅니다. 그러나 요나는 계속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고 니느웨성 동편에 초막하나를 짓고 하나님이 어떻게 반응하시는 가를 보고 있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신학적으로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신학적 지식의 잣대로만 하나님을 판단하고 다른 이들을 판단했던 것입니다. 마치 바리새인들이 했던 것과 같이 말입니다. 또한 복음을 전해서 구원 받아야할 자 그리고 복음을 전하지 않아야 할 자를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 정했습니다.


왜 우리는 내가 좋아하고 호감이 가는 사람 뿐만 아니라 우리 주위에 있고 내가 만날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까? 심지어 우리가 만난 사람들이 사기꾼, 성적으로 타락한 이들이라면 왜 그들에게 까지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까? 그들은 자신의 죄로부터 구원 받아야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주님께서 ”모든 민족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건강한 자에게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쓸데 있다고 누가복음 5:31에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완전한 자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라 불완전한자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을 통해 예수님을 닮는 자로 점점 변화되어 가는 곳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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