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 가운데서의 소망)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예레미아애가 3:21)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성전이란 이스라엘에 있어서 삶과 신앙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들의 성전에 대한 신앙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성전은 절대 파괴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우상을 섬기는 바벨론 민족의 공격으로 나라를 잃고 맙니다. 그러나 곧 바로 이러한 절망의 상황가운데 괴로워하던 저자는 21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그래서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도 소망을 가지고 계속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24, 25절).왜 절망 가운데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는가 ? 자비로 인해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의 긍휼( rakhum)은 “엄마의 태” 혹은 “내장” 라는 뜻으로도 쓰여집니다. 이 긍휼이라는 단어를 잘 설명해 주는 사건이 열왕기상 3장에 나오는 두 창기의 소송을 해결한 사건입니다. 하루는 창기인 두 여인이 솔로몬에게 재판을 해달라고 찾아왔습니다. 이 두여인으로 같은 집에 살고 있고 둘다 난지 3일된 아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날 이 두여인이 같은 방에서 잠을 잤는데 저 여인이 자기가 잠을 자다 실수로 자신의 아기를 깔려 죽게 해놓고 아들을 바꿔치기 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으니 이를 증명할 길이 없고 서로 살아있는 아들이 자신의 아들이라고 우기고 있었습니다. 그때 지혜로운 왕 솔로몬은 신하에게 칼을 가지고 오라고 해서 아이를 반으로 짤라서 반씩 나누어 주라고 명하였습니다. 그 때 진짜 아이의 어머니는 “그 아들을 위하여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26절)고 말합니다. 그때 솔로몬은 아이를 죽이지 말고 다른 여인에게 주라고 말하는 여인이 진짜 아이의 어미라고 판결을 했습니다. 이 열왕기상 3: 26구절을 좀더 문자적으로 번역을 하면 ”그녀의 내장이 불에 타 들어가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속이 시커멓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즉 자녀를 향한 부모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의 상태를 표현한 말이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를 “긍휼” 히 여기시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긍휼의 마음이 있는 것은 “언약의 사랑”, 즉 본문에 번역된 “자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2절과 32절은 긍휼과 자비를 같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비록 하나님은 영적인 아비로서 계속 죄 가운데 있는 그의 자녀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라의 패망과 성전 파괴라는 징계의 채찍을 내리치셨지만 징계를 받는 그의 백성을 볼 때 하나님의 속은 타는 것과 같은 아픔이 있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를 향한 긍휼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20-23절에 예레미아에가 기자는 비록자신들이 하나님의 징계의 아픔가운데 있지만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징계가운데 있을 지라도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계속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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