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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웰빙의 삶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린도후서 4:17)

수년 전 한 한국 기독교 인터넷 신문을 보니 어떤 젊은 신학자가 기독교 명상센터를 설립하고자 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인도 요가의 명상 법도 도입해서 영성을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이 기사를 읽어본 나는 실소를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영성이란 자신을 초월하고 육체를 초월하는 것에 목표를 둔 수련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땅에서 우리 주께서 주신 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다가 최종 목표인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부활된 몸으로 우리 주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고후 4:14절, 18절). 그리스도인의 영성의 최종 목표는 썩어질 육체의 부활입니다. 이것보다 더 육체의 한계를 초월하는 초월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떤 한 사람은 십여 년간의 뼈를 깎는 요가 수련을 통해 땅에서 십여 센티미터 뜨게 되었다고 합니다. 대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질문은 이것입니다. “What does it make difference? (그래서 어쨌다는 말입니까?)”. 이 땅에서의 사람은 언젠가 죽고 그 육신은 부패하고 마는데 말입니다 (16절). 그렇다면 이 땅에서 만을 위해 우리 육신의 웰빙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의 육체와 삶에 대해 준비해야 진정하고 온전한 웰빙의 삶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겠습니까?

이 말은 육체는 썩어져 없어질 것이니 무익한 것이고 영혼만이 선하고 귀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영지주의적인 이원론과 구분이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 육체적 부활의 몸으로 우리 주님 앞에 선다는 분명하고 확실한 믿음으로 (13절) 이 땅에서의 육신의 삶을 주신 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비록 고난과 어려움을 겪었지만 말입니다 (17절). 사람들은 약간의 육신의 유익을 얻고자 요가나 명상의 힘든 자세를 감내하고 시간을 기꺼이 투자를 합니다. 그러나 주를 위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고난과 어려움을 견디는 것은, 이를 통해 나중에 얻는 영광스러운 것(부활)에 비하면 마땅히 감내할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17, 18절).

예수그리스도와같이부활해서완전히새롭게변화된육체로우리주님앞에서는날을기억하며하루하루의삶을주신사명을위해최선을다하는삶이진정한영성을추구하는삶이요이세상뿐만아니라오는세상에서까지의웰빙을준비하는삶입니다. 죽음이후에떳떳하게우리주님앞에부활한몸으로서는것이영성의진정한목표요진정한웰빙을추구하는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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