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해 달라는 기도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그를 믿었으나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알리니라” (요한복음 11:45,46).


예수님께서는 베다니에서 죽은지 사흘이나 되어서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이 죽음에 생명을 부어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고 믿게 하려는 목적에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기적을 베푸신 것입니다 (42절). 그러나 이러한 죽은 자가 살아나는 기적을 직접 본 사람들 중에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대적한 사람들도 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베다니에서 행한 그 일을 예수님에게 적대적이었던 바리새인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래서 이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죽일 모의를 하게 만듭니다 (53절). 죽음이 정복되는 놀라운 기적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믿었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마음이 전혀 믿음으로 향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반대하는 편에 섰습니다. 같은 기적의 사건을 보고도 어떠한 사람들에게는 마음이 더욱더 완악해 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봅니다.


저는 오늘 아침 “Desiring God”이라는 인터넷 기독교 잡지에 실린 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주님, 저로 부터 저를 구원해 주십시오: 불신을 대적하는 매일의 기도” (Lord, Deliver Me from Me: a daily Prayer Against Unbelief) 라는 제목의 조 링네이 (Joe Ringney)라는 분이 기고한 글입니다. 이 글은 시편 16:1에 대한 묵상의 글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조 링네이는 말하기를 이 시편은 저자가 자신을 해하려는 적들이 누구인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아서 알 수는 없만 자신을 해하려는 세력들은 외부에 있는 적들인 동시에 자신 안에 있는 불신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나를 지켜주소서”라는 기도는 대적들로부터 자신을 지켜달라는 기도인 동시에 자신의 마음 속에 항시 꿈틀거리고 있는 불신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달라는 청원이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의 구절을 “나로부터 벗어나서 당신에게 피하나이다”라고 묵상합니다. 나의 죄악 된 욕망, 나의 의심, 나의 감정, 나의 불신으로부터 도망쳐서 주님께로 피하기를 원하니 도와 주소서라는 기도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묵상의 글을 쓰신 분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신 죽음에서 생명을 주는 기적을 보고서도 여전히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과 불신 속에서 헤어나지 못함으로,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는 편에 선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고, 우리의 내면 속에 그러한 악들이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해하려고 하는 적들로 부터 나를 보호해 달라고 기도할 때 진정으로 우리가 우리 주님께 기도 해야 하는 것은, 나를 억압하는 외부적인 환경과 적들로 부터의 구원만이 아니라, 내 속에 여전히 꿈틀대고 있는 나의 죄악 된 욕망, 의심, 감정 그리고 나의 불신으로 부터 나를 구원해 달라고 기도해야함을 깨닫습니다.


“주님, 저로부터 저를 구원해 주십시오” (Lord, Deliver Me from Me).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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