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중요성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히브리서 6:4-6).
한글 성경에는 없지만 이구절은 “For” (왜냐하면)으로 시작합니다. 이 구절들은 앞의 구절들과 연결이 된다는 말입니다. 앞 구절들은 신앙의 초보에 머물러 있지 말고 영적으로 성숙함에 나아가야 함을 말씀합니다. 그리고나서 “왜냐하면”으로 시작합니다. 영적 성숙으로 나아가지 않고 계속적인 초보에 머물러 있다면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는 배교의 상태에까지 될수 있다는 위험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의해서 보아야 할 것은 1절-3절까지엣는 “우리가” 라는 1인칭 복수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그들이”라는 3인칭 복수를 사용합니다. 배교에 대한 경고는 히브리서 수신자인 믿는 자에게 직접적으로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다음 구절인 9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라고 말씀함으로 히브리서 수신자들은 배교에 빠지지 않을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구절들은 구원 받은 자가 잘못으로 인해 구원이 취소될 수 있는가? 아닌가?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구절은 아닙니다. 문자 그대로 신앙이 성숙이 우리의 영적인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러한 신앙적 성숙이 없을 때 배교와 같은 위험한 지경에까지 놓여질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다른말로 하자면 영적인 미성숙의 위험함에 대해서 경고함과 동시에 영적인 성숙함이 성도들에게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석지영 교수의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카레리나”의 작품 해설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안나는 블론스키와 불륜을 저지르고 그 사이에서 아이를 낳게 됩니다. 남편은 안나를 용서하지만 안나는 블론스키와 함께 유럽으로 떠납니다. 이 둘의 사랑이 영원할 것 같았지만 이 둘의 사랑을 깨어지고 안나는 블론스키를 처음 만난 기차역에서 자살로 삶을 마감합니다. 불륜까지 감수한 이들의 관계가 깨어진 이유를 석지영 교수는 처음 시작부터 바른 시작의 관계가 아니니 깨어 질 수 밖에 없다는 통속적인 이유를 말하지 않고, 그는 서로의 관계에 성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처움에는 서로 불꽃이 튀는 사랑으로 함께 했지만 서로의 관계에 성장이 없음으로 이들의 관계를 더 나아가지 못하고 깨어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해석에 전적으로 공감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이와 같지 않겠습니까? 영적인 관계가 성장하지 않으니 신앙생활도 무디어지고 아무런 영적인 기쁨을 발견할 수 없고 능력도 계속적으로 경험할 수 없음으로 형식적인 신앙 생활을 하다가 결국에는 믿음이 없는 사람과 같은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히브리서 기자는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에서 떠나는 배교는 돌이킬 수 없는 가장 악한 범죄입니다. 성장하지 않는 신앙은 그만큼 위험한 것임을 기억해야할 것입니다. 신앙 성장을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과 기도와 교제와 예배등을 결코 가볍게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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