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마침표를 함부로 찍지 않기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룻기 1:20)
나오미라는 뜻은 “유쾌한/ 즐거운”(pleasant)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자신을 더이상 즐거운자로 부르지 말라고 말합니다. 대신에 “쓰디쓴”의 뜻인 “마라”라고 부르라고 말합니다. 나오미가 이러한 말을 한때는 오랬 동안 타향인 모압에서 살다가 이제 빈손으로 고향에 돌아왔을때 입니다.
나오미의 삶은 인간적으로 볼 때 불행의 연속이었습니다. 10년전쯔음에 자신들이 살던 이스라엘땅 베들레헴에 극심한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살기위해 남편과 두 아들을 데리고 이웃 나라인 모압으로 이주해서 10년을 살았습니다. 거기서 남편도 죽었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이 장성해서 그 땅에 있는 모압 여인과 결혼을 했는데 두 아들도 다 죽어버렸습니다. 이러한 기구한 인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제 더 이상 타향에서 살 이유가 없어졌고 또한 고향 땅에 흉년이 끝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모압 여인인 자부 룻을 함께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고향사람들이 다 몰려와서 고생때문에 몸이 너무나 많이 상해서 돌아온 나오미를 보고 “정말 네가 나오미냐?” 고 말했습니다. 그때 나오니는 자신을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로 부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삶 전체가 “즐거운” 삶이 아니라 “쓰디쓴”삶이었기 때문입니다.
특이한 것은 이때 나오미는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이름중 “여호와”로 부르는 것은 하나님을 언약의 하나님으로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즉, 이렇게 부르는 것은 자신은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은 자신의 하나님이시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저는 예수를 믿어 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은 저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저를 이렇게 대우하셨습니까?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주관하신다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힘든 삶이 계속될 때 하나님에 대해 나오미와 같은 섭섭한 마음이 들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왜 저를 그렇게 힘들게 하셨습니까? 왜 저를 힘든 삶 가운데 그냥 놓아두었습니까?’. 나오미가 그랬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삶의 결론을 너무 성급하게 내려서는 안됩니다. 소망을 일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나오미의 삶은 이렇게 끝이 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나오미의 삶의 결말은 마지막장인 4장에가서 비로서 나타납니다. 나오미는 손자를 품에 앉고 있고 사람들은 나오미에게 나와 축복을 합니다. 이웃들은 그 아이의 이름을 “오벳”(섬기는 자) 이라고 말하며 릇기서는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나오미는 다윗의 할아버지를 품에 앉고 있고 다윗의 자손을 통해 나중 예수님께서 탄생하게됩니다.
그러므로 삶의 마침표를 성급하게 찍지 말기 바랍니다. 삶의 결론을 성급하게 내리지 말기를 바랍니다. 주 안에서의 삶은 종종 끝에 가서야 그 결론에 대해 비로서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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