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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믿음이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일 3:14)


그래서 14절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생명안으로 들어간것”(영생을 얻은 것) 을 안다고 말씀합니다. 14절과 똑같은 말씀이 요 5:24에 나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여기서 14절의 “옮겼다”와 요 5:24의 “들어갔다”는 같은 헬라어 단어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들어갔다”(영생을 얻었다)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은 “믿음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고 말씀하고 요한일서는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고 말씀합니다. 바로 믿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15절에 “그 형제를 미워하는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바라”고 말씀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16절에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목숨을 버리신것 같이 형제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실제로 목숨을 버려야 한다는 말이 아님을 17, 18절에서 설명합니다. 17절 말씀은 형제를 사랑하는데는 희생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홈리스 피플을 1,2불씩 도와주는 것에는 우리의 희생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시절에는 하루에 보통 한끼 씩 먹었고 좀 있는 사람은 2끼씩 먹었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매일 갈아입을 옷이 있는 것이 아니라 속옷, 그리고 담요 역할도 하는 겉옷 한 벌씩 만을 대부분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배고픈 형제를 돕는다는 말은 안 그래도 적은 나의 양식이 줄어든다는 말이고 밤에 잘 때 추워서 떨 수 밖에 없는 희생을 각오해야만 한다는 말 입니다. 사랑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나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자기 희생이 필요로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오늘의 양식” 지난 금요일 (23일) 본문 해설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진짜 이상하게 여길 일은, 성도끼리 미워하고 교회가 사랑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 형제를 밟고 서려고 하고, 나의 자존심에 조금 상처를 입으면 참지 못하는 것 등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보스톤 주변 지역에 있는 교회들을 보아서도 그렇습니다. 한 교회는 교회가 싸움을 해서 갈라지고 갈라진 교회가 다시 갈라지는 일들도 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사랑과 믿음을 자기 손해요 자기 희생으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기꺼이 죽으심 예수님의 사랑은 자기 손해와 희생을 기꺼이 감수했던 사랑이었습니다. 이 사랑을 위해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으로 오신 날이 성탄절입니다. 빌립보서 2장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예수님께서보여주신사랑은형제자매를사랑하는데는자기손해와희생을필요로한다는말입니다. 이러한손해와희생을기꺼이감수한사람은예수님께서보여주는사랑을하고있는사람이고그러므로예수님을따라가고있는사람이며, 그사람은바르게예수를믿는사람이라는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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