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이 잘되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인정하심의 표인가?)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 (열왕기상 21:29).
이스라엘 왕 아합은 악한 왕이었습니다. 왕후 이세벨과 더불어 이스라엘 온 땅에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도록 조장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열왕기 상을 읽어보면 이상하게도 하나님께는 아합왕에게 너무나 관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제단에 하늘에서 불이 내리는 기적을 행하심으로,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기는 선지자들 앞에서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이 참 신이심을 증명해 보였습니다(18:25-40).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합 왕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왕후 이세벨에게 엘리사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기적에 대해 알려주자 이세벨은 화가 나서 오히려 엘리야 선지자를 죽이려고 합니다 (19:1,2).
이제 아람왕과 다른 나라 왕 삼십명의 연합군이 사마리아를 에워싸고 아합 왕에게 항복하라고 했습니다 (20:1).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한 선지자를 보내어 아람 연합군과 싸워 이기게 해주겠다고 말씀하셨고 실제로 적은 수의 아합의 군대가 아람왕과 연합군을 물리칩니다(20:20). 똑 같은 기적이 다시 일어납니다 (20:22-30). 그러나 아합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자신 임의대로 사로잡은 아람왕 벤하닷을 놓아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아합에게 심판을 선언하셨습니다 (20:42). 그리고 아합은 하나님께서 각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셔서 자신 마음대로 팔지 못하게 되어있는 나봇이라는 사람의 포도원을 나봇을 교묘하게 죽이고 빼앗는 악을 행합니다 (21:1-16). 이러한 아합에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어 심판을 말씀 하셨습니다 (21:21.22). 그때 아합은 옷을 찟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긁은 베를 요를 만들어 거기에서 자고 풀이 죽어 있었습니다. 회개의 행동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심판을 아합 시대에는 내리지 않고 아들 시대에 내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9절).
하나님께서는 유독 아합 왕에게만은 왜 그렇게 관대하십니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생각 해야 할 것은 우리는 우리의 상황을 보고 항상 하나님의 인정과 인도하심을 판단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합 왕이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길을 걸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계속 그의 길을 열어 주시고 심판을 유예하시는 것은, 그의 삶과 선택을 인정하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아합 왕에게 하나님의 크신 긍휼하심을 보여주고 있고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계속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환경을 통해 하나님의 인정과 인도하심을 발견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환경이 잘 풀려 감이 항상 하나님께서 나의 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환경을 통해 하나님의 인정하심과 인도하심을 판단하기 이전에 내가 행하고 있는 이 일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합한 일인가?를 말씀과 기도를 통해 진지하게 살펴 보아야만 합니다. 내가 행하는 일이 하나님 말씀과 일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환경이 잘 풀려나갈 때, 그 때는 하나님께서 나의 삶과 선택을 인정하시는 때가 아니라 그의 긍휼 하심을 보여주시고 있는 때이고,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이키도록 기회를 주시는 때 임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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