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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요나가 지금의 이라크인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가서 회개의 말씀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하나님을 피해 다시스로 도망 간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요나 1:1-10). 그가 신앙 이 없어서 그런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여호와의 낮을 피해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하나님을 피해 멀리가고 있었을 때 큰 풍랑이 그 배를 덮쳤습니다. 그 때 사람들은 죽음의 두려움으로 인해 각자의 신들을 향해 자신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래도 풍랑이 그치지 않자 누구의 잘못을 인해 이러한 풍랑을 신이 보내셨느가? 를 알기 위해 제비를 뽑았습니다.


요나가 뽑혔습니다. 그 때 요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 그리고 이 풍랑은 자신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이라고 뱃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요나는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럼 없이 그리고 떳떳이 말할 정도로 분명한 신앙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그 풍랑이 자신으로 말미암아 비롯 되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영적인 눈이 뜨여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요나는 신앙이 형편 없었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의도적으로 반항하고 대적하는 악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그랄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니느웨는 당시 앗수르의 수도엿습니다. 앗수르는 당시 엄청난 악을 행하던 민족이었음으로 요나의 모국이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는 위협적인 존재였습니다. 당시 앗수를 사람들은 자신들의 대적의 성을 함락한 후에, 대개 그 곳을 불살랐고, 모든 성인 남자들의 손과 귀를 잘랐으며, 그들의 눈을 뽑아낸 후 그들의 몸으로 큰 무더기를 쌓아 그들을 태양과 파리와 상처와 질식으로 고통하며 죽어가게 했었습니다. 소년들과 소녀들은 산채로 불태워 죽였고, 성주는 앗수르로 끌려가서 왕의 유흥을 위해 산체로 껍질을 벗기곤 했던 극악 무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앗수르 사람들은 이렇게 잔인하기로 악명이 높았던 사람들이었고 사람들은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몸서리를 쳤을 것입니다.


이런 악한 사람들을 향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서 하나님의 복을 받으라고 어떻게 설교를 할 수 있었겠습니까? 사람의 생명에대한 경외심과 도덕적인 가치라고는 눈꼽만큼도 볼 수 없는 야만인 같은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는 것이 정의로운 것이다라고 생각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살인자는 감옥으로 보내는 것이 정의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요나의 불순종의 배후에는 정의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나에게는 또 다른 불순종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만약 악한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가 외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다고 해도 그 악한 행위들을 어떻게 하루 아침에 버리겠으며, 나중 자신의 조국인 이스라엘을 침공해서 그들이 여태껏 해 왔던 것 처럼, 자신의 가족 친지 민족들을 잔인하게 죽일 지 누가 알겠습니까? 되지 못할 떡잎은 아예 뿌리가 나기전에 뽑아버리는 것이 현명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피해 떠나간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요나에게는 민족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민족의 미래를 생각하며 자신의 민족을 악하고 잔인한 앗수르의 손에서 구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꼭 신앙이 없어서 만은 아닙니다. 영적으로 어두워서 만은 아닙니다. 나름대로 그럴만한 이유와 사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길을 막고 가는 사람들을 향해 이야기를 하면 누구나 다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이해할 그러한 사정 말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사정과 이유도, 이 세상 사람들이 다 인정하고 고개를 끄떡일 수 있는 이유와 사정들도, 하나님의 분명한 뜻과 부르심 앞에서는 정당한 이유와 사정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분명한 뜻 과 명령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당화 하고 이유를 만들어 내어서는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근시안적인 우리의 생각과 뜻과는 반대로 하나님의 명령과 뜻은 우리 삶의 전체를 내다보아 언제나 올바르고,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에게 복과 유익을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있어 그럴만한 이유도 분명한 하나님의 명령과 뜻 앞에 그것들을 옆으로 비켜놓는 것, 이것이 바른 신앙의 자세이고 궁극적인 선과 유익을 이루는 길입니다.

나의 생각도 정당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정당함을 넘어서 완전합니다. 나에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나에게 분명히 보여진 하나님의 뜻 앞에서, 하나님은 나의 생각과 이유 보다도 더 완전한 생각과 이유를 가지고 계신 분이라고 믿고 신뢰하며 따르는 것을 믿음이라고합니다.


나에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더 크고 완전한 이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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