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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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하심,믿음 그리고 소망

“너는 암몬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 성소가 더럽힘을 받을 때에 네가 그것에 관하여, 이스라엘 땅이 황폐할 때에 네가 그것에 관하여, 유다 족속이 사로잡힐 때에 네가 그들에 대하여 이르기를 아하 좋다 하였도다”(에스겔 25:3) 에스겔서는 48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1~24장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의 내용이고, 25~48장은 예루살렘에 대한 회복의 내용입니다. 예루살렘을 회복하는 내용 가운데, 열방 국가에 대한 심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25~32장에서 16개의 이방민족에 대한 심판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의 백성인 예루살렘의 죄를 먼저 심판하고 그리고 예루살렘을 괴롭힌 이방 백성을 심판합니다. 그리고 나서 예루살렘을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방의 죄악까지도 심판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전 세계의 모든 민족들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지 유다 민족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이 원리는 베드로전서 4: 16-18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그러므로 이 원리는 암몬에게도 적용이 됩니다. 암몬

하나님께서 죄를 다루시는 법

“나를 잊어버렸도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에스겔 22:12). 에스겔서 22장 말씀은 에스겔에서 아마도 가장 긴 유다의 죄악들의 목록일 것입니다. 이 죄악의 목록은 대략적인 죄의 목록으로부터 시작해서 더욱더 상세한 죄의 목록으로 들어갑니다. 이들이 범한 죄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한 것들 이었습니다 (1절). 그리고 이들의 죄를 하나님과 이웃의 “피를 흘린 것”으로 묘사합니다(3,4,5,6,9,12절). 이들의 죄는 늙은 부모를 돌보지 않는 것, 이민자들을 무시하는 것, 고아와 과부를 업신여기는 것, 비방을 함으로 서로의 사이를 이간 시키는 것, 하나님을 예배하는 안식을 가볍게 여김으로 지키지 않는 것, 미신적 행동을 하는 것, 성적인 죄악들, 뇌물을 받는 것, 고리대금을 하는 것, 힘 없는 자를 착취하는 것 등입니다. 이 모든 죄악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비롯된 것입니다 (“나를 잊어 버렸도다”/ 12절). “나를 잊어버렸도다”는 말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서 지키고 따라야할 언약을 배반했다는 말입니다 (”너희와 세우신 언약을 잊어버려서…”/ 신명기 4:23).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구원을 얻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면 하나님 백성으로서 마땅히 살아가야 할 도리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율법이고 하나님 말씀입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미국에 이민 왔으면 한국의 법과 질

징계, 사랑 그리고 약속

“젊은 사자가 되매 여러 사자 가운데에 왕래하며 먹이 물어뜯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며…” (에스겔 19:6). 에스겔 19장은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유다 지도자들에게 애가(슬픔의 노래)를 지으라고 합니다. 그 애가의 내용은 유다 마지막 왕들의 죄와 그로인해 그들이 당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에서 유다를 젊은 사자로 그리고 푸도나무로 비유합니다. 처음의 젊은 사자는 17대왕인 여호아하스 왕입니다(3절) . 그는 애굽의 포로로 잡혀갑니다 (4절). 그리고 그를 뒤 이은 다른 젊은 사자도 (5절)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갑니다. 두번째의 젊은 사자는 18대 여호야김의 아들인 19대 여호야긴 왕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여호야김 왕에게 바벨론에 조공을 드리고, 복종해야 살 수 있다고 예언을 했습니다만, 그러나 그는 하나님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를 칼로 잘라 불에 던져버렸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대적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을 떠났으며 자신들의 지위와 권력을 악용하여 사람들을 삼키는데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물가에 심기운 포도나무는 (9절-11절)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왕을 가리킵니다. 그는 굵은 가지같이 뛰어나 보였지만 그도 바벨론에게 항복하라는 예레미아 선지자를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다가 결국 눈이 뽑힌 채로 베벨론 포로로 잡혀갑니다 (예레미아 34). 그런데 창세기 49:9-11을 보면 유다를 힘이

말씀에 대한 기대와 믿음

“인자야 이스라엘 땅에서 이르기를 날이 더디고 모든 묵시가 응험이 없다 하는 너희의 속담이 어찜이뇨” (에스겔 12:22)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유다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포로로 끌려가는 사람처럼, 대낮에 짐을 싸 가지고 길을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죄악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왕을 포함한 모든 백성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광경을 보던 유다 백성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느냐?고 묻거든 그들도 죄악으로 인해 이렇게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이라고 말하라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상징적인 행동을 하게한 까닭은 이들은 반역하는 백성이기는 하지만 혹시 그것을 보고서 깨달아 회개하지 않을까? 하는 하나님의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은 에스겔 선지자의 상징적인 행동과 하나님께서는 회개치 않는 자신들의 죄악을 반드시 벌하실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볼 눈이 있고 들을 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기대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의 속담의 말을 빌어 이렇게 말합니다. “날이 더디고 모든 묵시가 응험이 없다”. 즉 날이 지나 가더라도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것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도 ‘거 봐, 세월이 지나도 아무 일도 생기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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