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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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그리고 감사 찬송과 기도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시편 124:2) 시편 124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라는 부제가 붙어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러 갈 때 부르는 찬양 시이자 기도 시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가 하나님께 나와 예배할 때 무엇을 찬양하고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가?에 대해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먼저 본 시편기자인 다윗과 함께 예배하는 성도들은 자신들에게 닥쳤던 극심한 어려움과 위급했던 상황에 대해서 네가지 이미지를 예로 들어 이야기합니다. 첫째 이미지는 큰 동물이 작은 동물을 산채로 잡어먹는 이미지입니다. 힘 없이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말합니다. 두번째는 갑자기 홍수가 나서 사람을 쓸어가는 이미지입니다. 우리는 이미 쓰나미를 TV를 통해 그 위력이 얼마나 엄청난지 그리고 사람은 그 대적의 위력 앞에 얼마나 속수 무책인지를 간접적으로 경험했습니다. 세번째 이미지는 큰 맹수가 작을 동물을 잡아 와작와작 싶어 먹는 이미지입니다. 무기력하게 당하고만 있습니다. 그리고 네번째는 올무(덫)로 새를 잡는 이미지입니다. 모이를 먹으로 갔다가 속수 무책으로 잡히고 맙니다. 시편기자는 순간순간 힘들고 위급했던 상황들이 있었지만 믿음의 눈으로 자신의 삶을 뒤돌아볼 때 이 어려움과 위기를 이겨 나갈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여호와께서 자신과 그 백성들 편에 함께 하셨기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현실과 천국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1:16).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믿음으로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는 이미 원 주민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한 땅인 가나안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아브라함 평생동안 이루어 지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한 비옥한 가나안 땅은 결국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나라를 바라보라는 하나님의 싸인 인줄 깨닫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보다 더 나은 본향인 천국을 바라보며 평생을 살았고 천국의 소망 가운데 죽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천국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는 천국에 이야기하기보다 주어진 현실을 직시하고 잘 사는 법에 대해서만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천국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현실도피로 치부됩니다. 그러나 천국을 소망하고 사모한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세상을 등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세상에의 삶을 열심히 그리고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왜

말씀, 성령 그리고 양심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히브리서 9:14) 구약에서 죄 지은 인간이 하나님을 대면 할 수 있는 방법은 성막에서 제사장을 통해서 행해지는 동물 희생제사를 통해서였습니다.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동물이 죽고 피를 흘림으로 죄 지은 육체를 정결케했습니다. 그러나 이 속죄제사를 통한 죄용서는 완전한 것이 아니라 임시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매년 속죄일마다 성막에서 동물을 잡아 속죄제사를 행해야했습니다. 그런데 이 성막은 하늘의 성소에서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속죄 제사를 드리는 것에 대한 상징이었습니다 (히 8:5; 9:6).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은 하늘의 성소(지성소)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대 제사장이 되시고 제물이 되셔서 자신의 피를 가지고 속죄제사를 드린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한 대 제사장과 속죄 제물이 되셨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구약의 제사 제도가 가리키려고 한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제도를 통해서는 죄를 임시적으로는 씻을 수는 있었지만 영원히 씻을 수는 없었고 또한 인간의 양심을 온전하게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제사의 실체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늘의 성소에서 드린 제사는 우리의 죄를 임시적으로가 아니라 영원히 씻으셨

왜 예수님은 모든 시험을 다 받으셨는가?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브리서 4:15)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우리의 믿음이 연약해서 넘어지고 죄에 빠질때라도 우리가 믿는 믿음을 굳게 붇잡고 흔들리지 말아야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공감하심으로 불쌍히 여기실 수 있는 분” (“체휼하다”/Sympathize) 이시기 때문입니다 (4:15). 왜냐하면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시험은 다 겪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과 다르게 죄는 없으십니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경험해보지 않아도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그런데 왜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으셨습니까? 예수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흔히 큰 일을 겪고 나면 ‘나의 아픈 마음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해’ 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때에 ‘예수님도 나의 아픈 마음을 다 모르실 거야’ 라고 생각하지 못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도 다 겪어 보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나아가 내 아픈 마음을 다 쏟으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또한 내가 연약해서 자주 죄에서 넘어질 때, 그래서 예수님께 나아가 죄를 또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기가 부끄러워질 때, 예수님께서는 나의 연약함을 다 아시기

기부와 헌금

“오늘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역대상 29:5) 다윗이 왕이 되고 난 후 자신은 아름다운 왕궁에 거하는데 하나님의 궤는 마땅히 거할 곳이 없어 여전히 성막, 즉 텐트에 모신 것을 생각할 때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아니라 그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이 왕위에 있는 동안 아들 솔로몬이 나중 성전을 아무런 문제 없이 잘 건축할 수 있도록 모든 재료들을 다 준비해 놓습니다. 그리고 이에 더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많은 재산을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는데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신하들을 불러 놓고 이 사실을 말하면서 누가 이 일을 위하여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겠는가? 라고 신하들에게 묻습니다. 여기 5절에서 다윗이 성전 건축을 위한 헌금을 말하면서 “오늘날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 라고 말을 하는데 “손에 채워” 라는 표현은 대부분 제사장 직분을 행할 때 사용되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출애굽기 28:41을 보면 하나님은 아론과 그 아들을 구별하여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면서 이렇게 명령합니다. “너는 그것들로 네 형 아론과 그와 함께 한 그의 아들들에게 입히고 그들에게 기름을 부어 위임하고 거룩하게 하여 그들이 제사장 직분을 내게 행하게 할지며” 여기에서 “거룩하게 하여” 라는 말이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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