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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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꺽으심

“그 날에 다윗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이르되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궤를 내 곳으로 오게 하리요 하고…” (역대상 13:12) 12장에서 다윗은 명실공히 통합된 이스라엘 12지파의 왕이됩니다. 이제 다윗은 하나님의 벱궤가 모셔져 있는 기랏여아림에 가서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하나님의 벱궤를 모셔오는 일을 하고자 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모든 지파들로 부터 인정 받고 통합된 나라를 견고하게 하기 위한 정치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정치적인 야망을 가진 다윗은 여호와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중요한 일을 놓고서 기도도 하지 않고 장군들과 의논 합니다(1절).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가 더욱더 급하고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법궤를 모시고 오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 족속중 고핫 자손들이 벱궤를 메고 가게도록 하셨습니다 (민 4:15, 20). 그러나 다윗은 새 수레에 법궤를 싣고 가게했습니다. 언약궤가 운반될때 꼭 지켜야할 수칙을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그것은 벱궤를 제자장들이 덮어야 했고 벱궤를 보거나 만지지 않아야만 했습니다 (신 4:4-6, 15, 17-20). 그러나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 소들이 갑자기 뛰므로 웃사가 궤가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붙들자 그 자리에게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벱궤를 예루살렘

기도가 거절 당할 때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내가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역대상 17:4)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하나님을 위해 건축하고자 하는 거룩한 마음과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성전을 건축하겠다고 나단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 말씀드렸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소원을 거절하십니다. 거룩하고 아름다운 소원이 거절당한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선한 소원을 거절하시는가? 그 이유를 다윗에게 당장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윗의 성전 건축의 소원을 하나님께서 거절한 것을 다윗을 거절하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향한 다른 계획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함께하는 임마누엘의 약속을 하셨습니다 (8절). 다윗의 이름을 존귀하게 만들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8절). 그러나 무엇보다도 엄청난 약속은 다윗이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건축하는 대신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하여 “집”을 건축하겠다는 말씀입니다 (10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울지라”). 이말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 즉 왕조를 영원하게 만들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온 세상을 다스릴 왕이신 예수님께서 다윗의 왕조의 가계를 통해 이 땅에 오실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이 약속은 예수님을 통해 성취 되었습니다. 또한 성전을 건축할 다윗의 아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주를 위한 삶을 산자들

“그들의 땅 안에 있는 성읍에 처음으로 거주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느디님 사람들이라” (역대상 9:2). 본문은 바벨론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자들의 이름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지 7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삶의 터전은 더 이상 이스라엘땅이 아니라 바벨론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이 지금까지 피땀 흘려 일구어 놓은 터전을 버리고 황무지와 같은 이스라엘 땅으로 다시 돌아오기는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바벨론에서 이미 이루어 놓은 삶의 터전을 버리고 믿음을 따라 본토 이스라엘로 귀환을 합니다. 이들은 경제적인 이득을 따라 삶의 방향을 정한 것이 아니라 믿음을 따라 삶의 길을 정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헌신을 기억하고 계셨고 그 이름들을 성경에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사람들 중에 “느디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원래 가나안땅에 살던 기브아 족속들이었습니다. 가나안땅 사람들은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절되어야할 운명이었지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을 속여서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습니다 (수 9장). 그러나 곧 이들의 거짓말이 탄로가 났지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이들을 다른 가나안 백성들처럼 멸절 시킬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이름을 걸고 그들과 평화조약을 맺었기

저주가 축복으로

“저희의 형제 레위 사람들은 하나님의 집 장막의 모든 일을 맡았더라…저희의 거한 곳은 사방 지경 안에 있으니 그 향리는 아래와 같으니라” (역대상 6:48, 54). 이 말씀은 레위지파들은 한 곳에 모여 살지 못했고 곳곳에 흩어져 살았다고 말합니다. 창49장에 보면, 야곱이 죽기전 아들들에게 하는 예언의 말씀이나옵니다. 그때 레위지파는 시므온 지파와 함께 아버지 야곱으로 부터 축복은 하나도 받지 못하고 책망과 저주만 받습니다. 자기 누이 디나가 세겜 족속에게 성폭행 당했을 때 복수를 했는데, 자신들의 분에 못 이겨 하나님의 언약의 표식인 할례를 이용하여 세겜 족속을 완전히 진멸시켰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이들을 ‘잔해하는 칼’이라며, ‘너희들은 이스라엘 중에 흩어질 것이다’라며 축복이 아닌 저주를 했습니다 (창 49:7). 그래서 레위 지파 사람들은 흩어져 살았습니다. 만약 뭉쳐서 살았다면 그들의 혈기로 인해 또다시 잘못된 일을 저지를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궁극적으로 하나님 안에서 레위지파가 흩어져 산 것이 저주가 아니라 축복으로 바뀝니다. 출애굽 이후 레위지파는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이됩니다 (민수가 3:12,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첫 태에 처음 난 자를 대신케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 그래서 레위인들은 자신들의 땅은 가지지 못하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봉사하는 일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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