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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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의 욕심을 위한 간구와 필요를 위한 간구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마태복음 20:31)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위하여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으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었습니다 (18, 19절). 그런데 그 길을 가는 도중 제자들은 예수님께 요청(기도)를 합니다. 나중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나라를 통치하실 때 (육신적 나라) 자신들이 먼저 높은 자리를 차지해달라고 요청했고 이때문에 서로 다투었습니다 (20-28절). 제자들의 요구와 기도는 욕심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개인적 욕심을 위한 요구와 기도를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물리치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26-27절) 그러나 육신의 필요를 위한 기도는 우리 주님께서 응답하십니다. 바로 다음에 나오는 사건인 두 소경이 삶의 필요를 위해 예수님께 간구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러나 두 소경은 그냥 응답받은 것이 아니였습니다. 1) 소경들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의 칭호인 “다윗의 자손” 이라고 분명히 부릅니다. 즉 예수님이 누구신지 이미 듣고 알았고 믿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미 예언한 메시아는 그가 오면 “소경이 눈이 밝게 될 것” 이라는 예언을

결혼과 이혼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마태복음 19:6)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이혼에 대한 질문을 했습니다. 질문은 사람이 어떠한 연고로든지 아내를 버림으로 이혼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아닌가? 였습니다. 예수님은 이에 대한 대답으로 결혼과 이혼에 대한 성경적인 원리를 제시합니다: 1) 결혼은 남자와 여자의 결합이다 (4절). 2) 결혼은 우선순위가 부모로 부터 아내와 남편으로 바뀌는 것이다 (5절). 3) 결혼은 하나님께서 둘을 하나로 만드신 거룩한 사건이다 (5,6절). 4) 그러므로 이혼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7, 8절). 모세가 이혼증서를 써주고 아내와 이혼하라고 한것은 이혼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인해 그렇게 허락한 것이다. 5) 그러나 배우자의 음행은 이혼의 사유가 된다. 6) 결국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와 이혼하고 다른 여자에게 장가드는 것은 간음함이다 (9절) 무슨 이유를 트집잡아 아내를 버리고 이혼하며 자신이 마음에 드는 여자와 다시 결혼하는 것은 자신들의 육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임을 10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즉 마음에 들지도 않는 여자와 어떻게 평생을 살아가야합니까? 그렇게된다면 아예 결혼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 더 낮겠습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언제나 옳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당한 모든 일에 주는 공의로우시니 우리는 악을 행하였사오나 주께서는 진실하게 행하셨음이니이다” (느헤미아 9:33) 유다 백성들은 70년의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건축하고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제 느헤미아의 주도로 성벽을 건축을 완성합니다. 이제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학자이자 제사장인 에스라의 주도로 여호와의 말씀이 낭독되고 해석이 되니 말씀을 통한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백성들은 말씀을 통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하찮은 자신들을 택하셔서 계속되는 죄악에도 불구하고 버리지 아니하시고 붙들어주셨음을 깨닫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신들에게 신실하셨는가?를 깨닫습니다. 동시에 말씀을 통해 자신들의 죄악을 깨닫습니다. 천지를 만드신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택해서 하나님 백성으로 삼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출애굽때의 홍해에서의 기적들과 광야 40년동안의 기적들을 통해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하나님께 반역하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죽이고 그들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결국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베푸셨고 자신들에게 신실하셔서 자신들은 약속하신 말씀대로 다시 고국으로 돌아 올 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즉 자신들의 어려움은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한 자신들의 죄 때문이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사방에 우겨쌈을당할 때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들을 비웃으며…” (느헤미아 4:1). 사방에 우겨쌈을 당하는 때가 우리에게는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 느헤미아는 어떻게 그 상황을 극복했을까요? 느헤미아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할 때 안과 밖에서의 공격이 있었습니다. 1). 대적들의 심리적 공격이 있었습니다. 느혜미아와 유다 백성들이 성벽을 건설할때 산발랏과 암몬 사람 도비야는 “여우가 올라가도 무너지리라”고 비방을 하며 이스라엘 백성의 성벽 재건을 의지를 심리적으로 꺽으며 성벽 건축을 그만두도록 심리적인 공격을 했습니다 (3절). 그때 느헤미야는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4-6절). “저들을 벌하시옵소서. 이방민족에게 잡혀가게 하옵소서. 그들의 악을 덮어두지마옵소서” 2). 물리적 공격 시도가 있었습니다. 도비야가 유다 백성을 심리적 압박 작전이 실패하자 산발랏, 그리고 아라비아, 암몬, 아스돗 사람들을 규합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더 이상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 못하도록 치려고 했습니다 (7. 8절). 그때 느혜미아는 기도하면서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했었습니다. 파숫군을 두어 주야로 경비하게 한 것입니다 (9절) 3). 유다 사람들은 성벽을 건축하는데 스스로 지쳐갔습니다. 건축할 일은 많은데 우리는 이미 지쳤다고 스스로 자포자기 하는 말을 했습니다 (10절). 그러는 동안에 대적들

사람의 일 하나님의 일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마태복음 16:2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때로부터”, 즉 베드로가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는 바른 신앙 고백을 하고 난 후부터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비로서 십자가를 지는 삶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신앙에는 단계가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바로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거기서만 머무르면 되지 않습니다.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데 그 다음단계가 예수님과 함께 고난을 받고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이를 통해 믿음이 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져야한다고 말했을 때 베드로는 “절대 주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고 말했습니다 (22절). 그때 예수님께서는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라고 꾸짖으셨습니다 (23절). 베드로의 마음 속에서 그를 조정하는 사단을 향해 일침을 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일”에는 십자가 고난은 있어서는 안되고 오직 영광만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넣어준 사단을 바로 보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예수님과 베드로 자신과의 인간적인 관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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