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Pastor's Columm

Recent Posts
Archive

양심의 가책

“그 때에 분봉 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역사하는도다 하더라” (마태복음 14:1,2) 분봉왕 헤롯이 예수님의 기적과 말씀 등 모든 소문을 듣고 자신이 이전에 죽인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 속에는 자신이 과거에 한 일에 대한 두려움이 배여 있습니다. 자신의 죄를 지적한 세례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둔 후 자신의 두번째 부인인 헤로디아의 사주를 받은 의붓딸이 세례요한을 목을 원한다고 하자, 헤롯은 세례 요한을 죽입니다. 그는 자신은 자신이 한 말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것을 사람들 앞에 나타내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세례 요한을 죽임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대담함을 보입니다. 그러면서도 세례 요한을 죽인 것에 대한 불안이 그의 삶에 배여있었습니다.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양심의 가책때문입니다. 일말의 양심의 가책은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남겨놓으신 뜻밖의 선물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자심의 구세주로 받아들인 자는 양심이 씻겨진 자들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히 10:22).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말씀을 대하는 자세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마태복음 13:11) 마태복음 13장은 하나님의 말씀의 씨가 떨어지는 4가지 밭의 종류에 대해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가르치시면서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9절에 말씀하십니다. 즉, 말씀을 듣는 자세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듣는 자세가 되지 않는다면 그는 귀가 있어도 없는 자 와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그러므로 말씀이 그들의 영혼과 삶에 살과 피가 되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듣는 행위가 나중 심판의 분명한 근거가 됩니다 (12-15절). 하나님은 나중 그냥 아무런 근거없이 사람들을 심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판 이전에 충분히 하나님 말씀을 들려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말씀을 받는 자세가 바르지 않으면 결국 이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고 길가, 돌짝밭 그리고 가시밭에 떨어진 씨와 같이 싹이 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결국 우리 주님께서는 나중 심판 때 우리에게 들려준 말씀으로 우리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 말씀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인하여 심판 받게 될 것입니다. 나중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때 ‘저는 그런 말씀을 듣지 못했는데요’라고 하는 변명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말씀을 듣는 자세가 바르지 못하다면 자신이 말씀을

주님의 인정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마태복음 11:2-3). 예수님은 주의 일을 열심히 하다가 옥에 같힌 요한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갈릴리로 물러 가셨다가 북쪽 변방인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을 여행하시며 복음을 전하십니다(마 4:12-13) . 한 마디로 말해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투옥에 대해 상관하지 않으시는 모습입니다. 결국 세례 요한은 옥에서 예수님께서 진정 메시아인가?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그것을 물어봅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예수님은 자신을 통해 소경이 보게 되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는 것을 전하라고 대답하셨습니다(5절). 이것들은 구약에서 메시아가 향하는 표적들로 예수님께서 여러 동네로 돌아다니면서 이 일들을 지금 행하고 있다는 답을 준 것입니다. 즉 자신이 요한이 생각하는 그 메시아가 맞으며 자신은 그 메시아의 일을 지금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 의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자신의 생각대로 예수님께서 일하시지 않았기 때문었습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과 치료책은 6절의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치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이

영적인 복과 경제적 손실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이르되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 보내 주소서 하니 그들에게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마태복음 8:31,32) 예수님께서는 가라다 지방으로 가셔서 귀신이 들려 무덤 사이에 사는 사람을 만납니다. 예수님을 본 귀신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들임을 알아봅니다. 귀신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그 사람 가운데서 쫓아내실것을 알고 자신들을 돼지떼에게로 보내줄것을 강청하고 예수님은 귀신들을 돼지떼에게 들어가게 하심으로 그 사람을 고칩니다. 그러자 돼떼는 바다로 들어가 몰사하고 맙니다. 유명한 무신론자 버틀랜드 러셀은 “나는 왜 그리스찬이 아닌가” 란 책에서 ‘왜 예수님은 능력이 있으면서도왜 귀신들을 그냥 떠나가라고 말하지 않고 돼지떼에게 들어가라고 해서 불쌍한 돼지떼를 몰살시켯는가?’ 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돼지들에게 그리고 돼지 떼의 주인에게 몹쓸짓을 한것이라고 주장하며 예수님을 도덕적 문제가 있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그런데 만약 귀신 떼들이 그 지역에서 활동하며 모든 사람들에게 들어간다면 그 지역 자체가 큰 문제에 직면할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돼지 떼 주인에게 나중 보상해주지 않았다는 말도 없지만 보상해주엇다는 말도 기록되지 않아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모릅니다. 본문은 그 보

Follow Us
  • Facebook Basic Square
  • Twitter Basic Square
  • Google+ Basic Squ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