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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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를 복으로 바꾸는 복음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에 던지며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열왕기상 2:21). 엘리사 선지자가 여리고성에 갔을때 성읍 사람들이 엘리사 선지자에게 찾아와서 “우리 주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터는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못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신들의 땅을 어떻게 해줄것을 간구했습니다. 여리고성은 여호수아가 저주를 선포한 성이었습니다 (여호수아 6:26, “이 여리고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 그래서 그 말씀을 무시하고 히엘이라는 사람이 여리고를 재건하다가 그 저주의 말씀대로 맡아들과 말째 아들을 잃습니다 (열왕기상 16:34). 그러나 엘리사 선지자가 새 그릇에 소금을 닮아 물의 근원에 뿌리니 그 저주받은 물로인해 소산의 열매가 맺다가 떨어지고 아이를 낳다가 유산하는 그러한 여리고성이 고침을 받습니다. 새 그릇의 소금은 복음과 하나님 말씀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전한 복음과 하나님 말씀이 저주받은 성에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을 다시 가져다 주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여리고성의 저주는 “여호수아”(“여호와가 구원이시다”는 뜻)에의해 선포가

어떻게 살다 죽을 것인가?

“엘리사가 가로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열왕기상 2:9) 엘리아 선지자는 자신이 곧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승 엘리아는 제자 엘리사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엘리사는 스승 엘리사에게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있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엘리사가 스승인 엘리사 선지자보다 두배난 더 많은 능력을 행하게 해달라고 간구한 것이 아닙니다. 스승의 뒤를 이어 여호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의 길을 걸어가게 해달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갑절”을 받는다는 것은 집안의 장자가 받는 유산을 말하고 (신 21:7) 그러므로 장자로서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받겠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엘리사는 영적인 장자로서 스승 엘리아의 선지자의 유업을 이어받게 해 달라고 요청한것입니다. 스승 엘리아가 걸었던 선지자의 길은 기적과 영광스러움도 있었지만 결코 환영만 받는 길은 아니었습니다. 바알 선지자와의 목숨을 건 영적 전쟁도 있었고, 왕후 이세벨로 부터 끝없는 죽음의 위협도 받았습니다. 바알 선지자들과 갈멜산에서 영적 대결을 할때 기도로서 하늘에서 불이 내려 제물을 태우는 기적도 베풀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기적을 본 이스라엘 백성은 그 당시에는 하나님을 따르는것 같았지만, 여전히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상을

절박한 심정으로 말씀을 전하기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디모데후서 4:2) 사도 바울은 우리는 언젠가 주님 앞에 서게될 것인데 그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모든 주의 일을 하라고 먼저 1절에서 말씀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는 언젠가 우리가 이땅에서 행한 모든 삶과 생각과 봉사 등을 가지고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사람앞에서 사람을 속이고 자신을 속일 수 있을는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마음 속 동기까지 아시는 주님 앞에서느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주님 앞에 서게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주의 일을 하라” 는 말씀이 아니라 “분명히 주님 앞에 서게된다는 확실한 사실을 기억하며 주의 일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모두 분명히 우리 주님 앞에 우리가 행한 우리의 생각와 모든 삶들을 가지고 벌거벗은 모습으로 서게될것입니다. 언젠가 우리는 주님 앞에 분명히 서게될 것인데 그렇다면 그때까지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입니까? “말씀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어느때고 말씀을 준비하고 전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2절). 여기서 “항상 힘쓰라” 는 말의 뜻은 급박하고 절박한 심정을 가지고 하라는 말입니다. 제출해야할 서류의 마감시간이 다가옵니다. 어떠한 심정으로 그 서류를 마무리하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날이 다가옵니다. 어떠한 심정으로

자기 사랑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디모데후서 3:1-3) 마지막때가되면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 사랑하는 것을 다른 것으로 대치한다고 말씀합니다: 1) 자기를 사랑함 (2절) 2) 돈을 사랑함 (2절) 3) 쾌락을 사랑함 (4절). 그 결과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교회 공동체내의 성도들)과의 관계가 깨어지게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인은 어느것보다도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마 22:37-39). 우리는 하나님으로 부터 은혜를 받고 싶어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싶어하며, 삶의 여정에서 믿고 함께 동행할수 있는 진실된 친구를 찾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이러한 것들을 얻을수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음식은 절제하지 아니하고 땀흘리며 운동은 하지 않으면서도 건강한 몸을 유지하기를 바라는 것과도 같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자기 자신의 삶의 왕 자리를 주님께 내어준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이 무엇을 말씀하는가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 자기삶의 기준을 스스로 만들어 놓고 그것에 열중하는 자들은 자기 자신을 자신의 삶의 왕의 자리에 스스로 앉아있는 사람들입니다.

모세의 죽음이 의미하는 것들

“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 이십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신명기 34:7) 모세는 비록 나이는 많았지만 아직 강건했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가 한 약속의 땅 가나안땅을 들어가지는 못한채 바라만 보고 죽음을 맞이합니다.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는 그가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신 32:51). 1). 모세의 죽음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것인가를 보여줍니다. 모세의 건강할때 죽음은 후대들에게 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려줍니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사는 말을 함부로 하고 아무렇게나 행동할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대표하고 대리하는 자로서 하나님을 사랑과 은혜를 세상에 나타내야하는 자입니다. 2) 하나님의 뜻대로 삶을 살다가 하나님의 뜻대로 삶을 마감하는 것이 축복임을 말씀합니다. 모세는 지금까지 충성하다가 마지막 한번의 잘못으로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맙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결정에 대해 모세가 불평햇다는 것을 어디에서나 찿아 볼 수 없습니다. 건강할때 갑작스러운 죽음, 그리고 자신의 삶의 목적이었던 가나안땅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결정을 존중했고 순종했습니다. 세상은 내가 바라던 것을 성취하는 삶을 축복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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