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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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하나님을 경외함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민수기 20:12)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한지 한 달이 지난 뒤에 신 광야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마실 물이 떨어졌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르기를 회중이 보는 데서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습니다. 물이 많이 나왔고, 회중과 짐승들이 마셨습니다. 이 일로인해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2가지 이유로 인해 모세는 그렇게 그리던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첫째는 불신앙입니다.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백성의 물이 없음으로 인해 하나님을 향해 불평하고 원망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마실 물을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반석을 향해 명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반석을 지팡이로 2번 칩니다. 믿음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올바른 반응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반응하여 그대로 행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는 마치 과거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땅 백성의 강함을 보고

구별과 연합

(구별과 연합) “레위인은 네 직무와 장막의 모든 직무를 지키려니와 성소의 기구와 제단에는 가까이 하지 못하리니 두렵건대 그들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레위인은 너와 합동하여 장막의 모든 일과 회막의 직무를 다할 것이요 다른 사람은 너희에게 가까이 하지 못할 것이니라” (민수기 18:3,4). 하나님께서는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는 성소의 일을 담당하고 레위지파는 아론과 그의 아들을 도와 증거장막 앞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했습니다. 제사장의 일과 레위인의 일은 철저히 구별되었습니다. 레위인에게는 성막을 지키고 성막에서 제사장을 도와 봉사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성전 제단에서 성전의 기물을 사용하여 제사를 드리며 섬기는 일은 오직 제사장만이 할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는 직무는 구별이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민수기16:2을 보면 레위지파의 고라가 다른 이들을 선동해서 모세를 대적했다고 말합니다. 모세에게 ‘너만 이스라엘의 지도자인가?’라며 모세의 지도자직에 도전을 합니다. 이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을 계급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들도 높은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직분을 계급으로 생각해서 모세를 도전한 이들을 징계하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직분을 세상의 계급으로 말한것은 한번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더 큰 직분이라는말은 거기에 대한 책임도 크고 잘못했을때 그에 대한

예수의 흔적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갈라디아서 6:17) 여기에서 "흔적"이란 말은 헬라어로 "스티그마타”인데 이는 당시 로마제국에서 노예나 가축에게 불도장을 찍어 소유권을 표시하는 행위였습니다. '낙인' 즉 불에 태운 흔적입니다. 한 번 노예로 낙인찍히면 평생토록 그 주인의 뜻에 절대 순종해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스티그마타는 확실한 소속관계와 주종관계를 표시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사도 바울이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고 말한 것은 "내게는 예수의 낙인이 찍혀있습니다. 나는 그분의 종입니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예수의 종된 표식(흔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따름으로 인해 몸에 얻은 고난의 흔적(상처) 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당한 고난이 가장 잘 요약된 곳이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입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 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고 애쓰며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주

복음과 차별

(복음과 차별)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2:16). 이 말씀은 원래 사도바울이 베드로를 책망한후 한 말입니다. 사건은 이렇습니다. 게바(베드로)가 안디옥에 갔을때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함께 식사를 한다는 말은 함께 식사하는 자들을 받아들이며 그들을 한 가족의 위치에 둔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구약율법에 의하면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유대인들은 악한자로 취급 받았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안에서는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분이 없어졌다는 것을 하나님으로 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았습니다(사도행전 10장의 고넬료 사건). 그럼에도 예루살렘에서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중 한명인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유대인)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이방인 성도들과 함께 식사를 하던 베드로는 그들의 비난을 두려워하여 이방인과 식사하는 것을 그만 두었습니다. 자신은 이방인과 다르다는 것을 행동으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베드로의 행동에 단호한 반대를 표했습니다 (“면책하다”

은혜와 회개

(은혜와 회개) 7/2/2017 “한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나아가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이 큰 무리를 보느냐 내가 오늘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 (열왕기상 20:13). 하나님께서는 절체절명의 위기에빠진 아합왕을 돕기로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7232명의 군사만으로 수없이 많고 강력한 아람군대를 이기게하십니다. 그런데 아합왕은 믿음의 사람이 아니라 믿음을 배반한 배교자요, 왕후 이세벨이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일때도 막지않음으로 그 악한 행동에 무언으로 동조한자 입니다. 그럼에도 왜 하나님께서는 아합왕에게 큰 도움을 주십니까? 하나님께서 "여호와인줄 알게하기 위함" 입니다 (13절).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회개하고 주께로 돌이키게 하고자 함입니다. 우리가 때때로 맏음의 삶을 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우리 삶이 잘 풀리는때가 있습니다. 그때 삶이 잘풀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불신앙을 모르거나 묵과하시기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과 호의를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사랑과 호의를 베푸심을 통해 여호와의 은혜를 깨닫고 이 은혜를 베푸시는 여호와께로 돌아서라는 부드러운 권고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아 잘못된 길을 떠나 주님만을 따르라는 안타까움 가운데 부드러운 외침임을 기억해야합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자에게 주시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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