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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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편에 서기

(하나님 편에 서기) 3/26/2017 대중의 힘은 강합니다. 역대 독재자들은 포풀리즘을 통한 대중 설득력을 잘 이용했다는 것은 이미 다 잘알 고 있는 사실입니다. 포퓰리즘의 전형은 아르헨티나의 전후(post-war) 정치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1945년 집권한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은 이른바 ‘페론주의’ 노선을 편 결과, 1940년대 세계 6위 경제대국이었던 아르헨티나는 제3세계 국가로 추락합니다. 노조의 요구에 부응하고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을 펴면서 권력을 유지한 결과, 개혁적 이념을 표방했던 페론주의는 결국 단순한 포퓰리즘, 즉 인기영합주의로 전락했던 것입니다. 민수기 14장을 보면 대중을 따르는 포풀리즘에 대항해서 하나님의 편에 선 믿음의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전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정탐꾼 12명을 가나안 땅으로 보내 정탐 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이미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때부터 그들에게 주기로 약속하셨고 이스라엘을 가나안 으로 인도하실때 그것을 누누히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나 40일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각 지파의 지도자들은 온 이스라엘을 모아놓고 보고를 하는데,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한 가나안땅은 아주 비옥하고 풍요로운 땅이지만 그 땅을 차지하고 있는 가나안 족속들은 아주 강하고 몸집도 장대한 족속들이고 성도 아주 견고해서 가나안땅을 정복

평범한 삶을 통한 영적인 삶

(평범한 삶을 통한 영적인 삶) 3/19/2017 필립 얀시는 그의 책 “수상한 소문”에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위해 산다는 것은 주를 위해 특별한 일을 해야하는 것만이 아니라 주어진 평범한 일상의 삶을 통해 이루어질수 있음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방을 꾸리고 거처를 옮기는 것으로 믿음을 표현했다. 다윗은 왕국을 다스렸다. 예수님은 목수의 작업실에서 못을 박으셨다. 바울은 친구를 사귀었고, 장막을 꿰맸고, 여행을 계획했고, 예루살렘의 가난한 자들을 위해 기금을 모금했다. 그런 평범한 활동을 통해 하나님 나라는 전진했다. 그들이 ‘무엇’을 하는가보다는 ‘왜’, ‘누구를 위해’ 하는가가 더 중요했다. ….마찬가지로 교회 식당에서 미소로 퍼주는 스프, 결혼의 끈을 이어주는 사랑의 증표들, 매일 장애아를 돌보고 몸이 불편한 부모를 봉양하는 일, 일터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끝 마친 업무, 이 모든 행위들 역시 예배로 드려질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그들이 ‘무엇’을 하는가보다는 ‘왜’, ‘누구를 위해’ 하는가가 더 중요했다”라는 구절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직업을 가지고 어떠한 일을 하는가에 중요성을 부여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어떠한 일을 하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하는 일이 어떠한 일이든 ‘누구를 위하여 왜 하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보십니다. 무엇을 하던지 그 일을 통해 주님께 영광

나무를 심은 사람

(나무를 심은 사람) 3/12/2017 “나무를 심은 사람” 이라는 짧은 영화를 본적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원래 프랑스의 작가 ‘장 지아노’가 쓴 소설인데, 영화로 제작되어 1987년에 아카데미상 단편영화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 영화는 여행객이 여행을 하다 우연히 만난 양치기 노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산중턱의 동네는 사람들이 나무를 짤라 숫을 구워서 그것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 곳은 매일 매쾌한 냄새와 연기로 진동하고 나무는 점점 사라져 산은 황페해져가고 있었습니다. 이와 함께사람들의 마음도 황페해져갑니다. 나무가 없어지자 결국 사람들은 그 곳을 다 떠나고 맙니다. 그런데 양치기 노인은 이 숫을 굽는 동네에 좀 떨어진 곳에서 외롭게 홀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가 밖으로 나갈때면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황무지에다 꾸준하게 토토리를 심습니다. 매일 밤 크고 금이 가지 않은 도토리를 정성껏 고른 뒤, 다음날 양을 치러 나가서는 짚고 다니는 쇠막대기로 구멍을 파고 도토리를 심곤했습니다. 수년이 지난 뒤에 여행객이 그 곳을 다시 찿았을때, 황무지였던 그곳은 푸른 나무로 뒤덮인 울창한 숲이 되어있었고, 숲엔 시원한 바람이 지나고 맑은 물이 흐를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숲가로 몰려와 집을 짖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정부의 관리들도 황량했던 산과 들이 아름다운 숲으로 뒤덮혀 있었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성령의 임재를 체험함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한복음 14:18, 21). 예수님께서 승천하심으로 제자들을 떠나가게됨으로 예수님을 대신해서 성령님을 보내시게되는데 이 성령님은 제자들과 영원토록 함께 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의 헬라어 뜻은 ”빛 가운데 가져오다, 나타내다, 혹은 눈에 보이게하다”라는 뜻입니다. 즉 분명하고 눈에 잘 띄는모양으로 나타낸다는 말입니다. 요한 복음 21:1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고있던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몸을 눈이 보이게 나타내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나타내다” 라는 단어가 바로 “나를 나타내리라”는 단어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나를 나타내리라”고 하신 말씀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후 제자들은 비록 예수님을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그를 생생하게 경험하게되는 삶을 살게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지금 곁에 계시지 않는 예수님을 눈에 보이는 것 같이 생생한 임재의 경험을 할수 있습니까? 성령님을 통해서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통한 예수님의 임재의 경험은 예수님을 사랑해서 그 말씀을 순종하는 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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