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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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알의 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 24). 이 요한복음의 말씀은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올라온 헬라 사람들 몇이 예수님을 만나 보고자 할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헬라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예수님의 기적들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얼마 전 죽은지 사흘이나 되어서 냄새나는 나사로 라는 사람을 살린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고, 살아난 나사로도 아마 만나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이 기적들을 행하신 예수님을 얼마나 만나 보기 원했겠습니까? 기적을 베푸시는 위대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우쭐하고픈 마음의 의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자기 성취의 도구와 입신 출세의 발판으로 여기려고 했던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속내를 안 예수님은 그들과의 만남을 거부합니다. 그리고 “한알의 밀”의 말씀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고난과 죽으심을 땅에 묻혀 썩어지는 한 알의 밀로, 부활을 그 열매로 비유합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은 우리 죄의 속죄를 위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였고 부활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속죄 제사를 받으셨다는 것을 증거 합니다. 그 결과 수많은 생명이 부활의 열매로 탄생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고난의 씨앗으로 잉태된 기독교의 신앙은 자기를 채우고 살찌우는 신

표적

(표적) 2/19/2017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요한복음 11:47)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린 사건을 성경은 “기적”이라고 말하지 않고 “표적”이라고 말씀합니다. 표적은 싸인(Sign)입니다. 화장실 싸인은 화장실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기적을 통한 싸인은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고 예수님은 누구신가?를 가르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사건을 통해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인것을 믿게하려함이고 이를 통해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께서 영광을 돌리려하는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계실때 모든 죽은 자를 다 살리지 않으셨습니다. 나사로 말고 두번이 더 있었습니다. 야이로의 딸을 살린 사건과 (막 5:22-43), 나인성에서 한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사건입니다 (눅 7:11-17). 왜 죽은자를 모두 살리지 않았습니까? 아니 적어도 몇 백명은 살려야지 왜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표적(싸인) 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사로 살리신 표적을 보고 ‘예수님은 모든 죽은 시체를 살리시는 분이다’ 라고 말하면 성경을 잘못해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실때 모든 병자들을 다 고쳐주시지 않았습니다. 얼마의 병자들만 고쳐주셨습니다. 이 병고치는 기적을 통해 하나님께서 가르키기를 원하시

예수님의 일하시는 방식에 의문이 갈때...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요한복음 11:6)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던 나사로가 병이들어 죽게되자 나사로의 누이들은 사람을 요단강 건너편에 있었던 예수님에게 보냈습니다. 위급하니 즉시와서 동생을 고쳐달라고 전갈을 보냈던 것입니다 .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약 3키로 떨어진 곳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사로의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있던 곳에서 이틀을 더 지체하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사로가 죽었고 그 다음에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사로가 있는 베다니로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베다니는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하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왜 예수님은 급하니 도와달라고 요청할때 도와주시지는 않고 나사로가 죽은 다음에 그 위험한 곳인 베다니에 가셨습니까? 사람을 통해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예수님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고 말씀하셨음에도 왜 나사로는 죽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고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4절). 그리고 이로인해 결국은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15절). 결국 죽은 나사로를 살림으로 이 두가지 목적을 다 이루십니다. 우리는 종종 예수님의 지체하심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없을때가 종종 있습니다. ‘왜 그때 거기에 예수님께서 계시지 아니하셔서 슬픔과 눈물

진정한 예배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한복음 4:20). ”신령”이라는 말은 ”영으로” 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가르키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예배드릴때 우리가 우리 마음을 담아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사야 1:11, 12을 보면 마음이 담겨져 있지않은 형식적인 예배를 하나님은 받지 아니하시고, 그 예배를 싫어하시며 제물과 시간만 소비할 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진리로” 예배한다는 말은 하나님이 누구신가 앎을 통해 가능합니다. 예수님이 곧 진리이고 하나님 말씀이 진리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그리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무엇을 하셨는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잘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깊이 예배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예배의 깊이는 하나님을 아는 것에 비례합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를 용서함받은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가 전심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찬양과 경배가 예배입니다. 그래서 진실된 예배는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이 누군지를 깨달아 하나님에 대한 감사, 존경, 경외감을 가지고 최상의 존재앞에 엎드려 절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때 우리 죄를 회개하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나는 구원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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