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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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자 입니다!

(나는 행복자 입니다!) 12/25/2016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신명기 33:29) . 이 말씀은 모세가 죽기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땅을 들어가기 직전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말입니다. 여기서 특별히하나님을 “여호와” 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이름중 “여호와”는 언약의 하나님을 말할때 쓰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고 언약을 신실히 지키시는 하나님은 언약의 대상인 이스라엘에게 신실하셨고 또한 신실 하실 것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행복자라고 말한 이유는 과거를 돌아볼때 이스라엘과 같이 여호와의 구원을 받은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기서 구원이라고 함은 영적인 영혼의 구원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으로 부터의 구원, 즉 삶의 인도와 보호와 간섭을 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데서 기적적으로 구원해 내시고 홍해를 마른땅과 같이 건너게 하셨으며 맛나와 메추라기와 사막에서 물을 내므로 당신의 백성을 먹이셨습니다. 광야 40년을 지나는 동안 다른 백성들은 누리지 못한 은혜와 기적을 맛보았습니다. “주께서 사십 년 동

죽음을 기억하며 사는 삶

(죽음을 기억하며 사는 삶) 12/18/2016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전도서 7:2) ` 전도서 7장 2절은 결국 ‘사람은 언젠가 죽는 다는 것을 생각하며 오늘의 삶을 살아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톨스토이가 그의 소설 “이반일리노치의 죽음”에서 말했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침내 죽게 될 존재임을 습관적으로 부인하며, 애써 죽음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어합니다. ‘죽음을 기억하며 살라’는 말은 어차피 죽을 것이니 삶을 하찮은 것으로 여겨라 는 말이 아닙니다. 주신 삶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그리고 진지하게 살아가게 만드는 적극적인 삶의 행위를 거부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사실, 미우라 아야꼬가 "삶에 답이 있을까?"에서 말했듯이, 산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 권리가 아니라 '의무'이며 '임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을 때 모두에게 귀한 사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녀가 말한 것 같이 "아무리 머리가 나쁘더라도, 팔과 다리가 없더라도, 아무리 이상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도, 잔인해도, 하나님께는 폐기물처럼 버려야 마땅한 인간이란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삶은 고귀함을 넘어 거룩한 것입니다. 에이든 토저 (A.W. Tozer)는 “영적인 사람"이라는 글에서 죽음에 대해 말하기를, "세상을 사랑하는 육신

괄호(    )가 있는 삶

(괄호( )가 있는 삶)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전도서 3:1,2) 우리 삶에는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수고를 할찌라도 우리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있습니다. 반면 우리는 별로 수고를 한것 같지 않은데 그 일들의 결과가 좋게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을 전도서 3장은 삶에는 우리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때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때가 있으니 우리가 아무리 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하는, 일과 삶에 대한 부정적이고 수동적인 인식을 가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또한 삶은 이미 운명지어져 있으니 삶에 대해 자포자기 하는 운명론자가 되라는 말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일은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래 일은 우리에게 수고와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삶에 기쁨과 의미를 가져다주며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땅을 다스리는 거룩한 사명이었습니다 (창 2:15). 그러나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일은 고통과 수고가 되었지만 (창 3:17, 18),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된 그리스도인에게 일이란 주를 위해서하는 거룩한 수고입니다 (고전 15:58). 그리고 그 수고에 대한 열매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맺도록 하실 일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일에대해 부정적이 되지 않아야하고 운명론적

하는 일이 헛되지 않기 위하여…

(하는 일이 헛되지 않기 위하여…)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전도서 1:14) 전도서1장은 하나님을 떠난 삶과 일의 허무함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특히 전도자는 일에 대해서 말하는데 모든 인생들의 일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지만 그것들은 수고로움만 더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13절). 또한 모든 일들은 바람을 잡으려해도 잡을 수 없는 것과 같이 헛된 것임을 말합니다. (14절). 일을 하면 할수록 삶에 도움이 되기는 되지만 이로인해 부작용도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유용한생활용품이 공장에서 만들어져 우리 삶을 편안하고 편리하게 해주지만, 동시에 공해를 만들어 암을 유발하게하고 운동을 하지 않게 많들어 수많은 성인병을 유발하게합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인생의 일은 삶의 문제를 풀수도 없고 더할수 없는 뺄셈과 같은 것임을 깨닫습니다 (15절). 또한 전도자는 열심히 쌓은 지혜와 지식도 부질 없고 어리석은 것이며 허공에 침 밷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16-17절). 왜냐하면 많은 지혜나 지식은 삶의 의미를 바로 깨닫게 해주고 삶을 더 풍성하게 해 주기는 커녕 더 많은 번뇌와 근심을 가져다 주기때문입니다 (18절). 그러므로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씀합니다 (잠 1:7, 9:10 시 111:10). 하나님을 떠난 지혜는 헛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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