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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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강함은 시험을 통해서만 생긴다

“한계점에 이르러서도 끊어지지 않았을때 비로서 강한 관계가 이루어진다…모리아 산을 오르는 아브라함, 뜨거운 태양 아래서 가려운 피부를 기왓장으로 긁어대는 욥, 광야를 헤메는 엘리아, 딴일을 달라고 애원하는 모세, 이들 영웅은 모두 하나님을 경솔하며, 무력하며 심지어 사악한 존재로 판단하고픈 위기에 처했다. 어두움 속에서 헤메던 그들은 기로에 섰다. 이를 갈며 등을 돌릴 것인가, 아니면 믿음으로 한발짝 내 디딜 것인가. 결국 모두가 믿음의 길을 선택했다. 그들이 믿음의 거인으로 기억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경에는 이런 시험에 무릎을 꿇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가득하다. 가인, 삼손, 솔로몬, 가룟 유다 등. 너무 빨리 끊어진 부부 관계처럼 이들의 삶은 슬픔과 후회의 썩은 냄새를 풍긴다. 아, 그러지 말걸. 오늘날 미국에는 소비 풍조가 상거래뿐 아니라 인간관계에까지 파고들고 있다. 배우자를 몇년마다 새 모델로 바꿔야하는 자동차 취급하는 것이다. 교회를 이런식으로 바라보는 크리스천도 있다. 심지어 하나님 조차 소비품 취급하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이 잘해주시면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이 멀리계시거나 묵묵부답이시면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 그러나 어려운 순간에도 굳이 믿음을 붙잡아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진정한 믿음은 시험을 통해서만 생기기 때문이다. “ -필립 얀시/ “어 하나님 웬일이세요?”에서- 우리가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되면 사단에 제일 먼

진정한 삶의 아름다움

제가 신학교에서 공부들을 마칠 때까지 결혼 한 학생들을 위한 학교 아파트에서 저의 가족이 함께 살았었는데 저의 가족은 아름다움과 역사가 함께 공존하는 타운에 살았었습니다. 학교는 South Hamilton이라는 조그맣지만 아름다운 타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타운 바로 옆에는 Wenham 이라는 미국의 초기 역사와 함께 하는 조그만 타운이 붙어 있습니다. 두 타운은 행정적으로는 독립된 두 타운으로 존재하지만 모두다 작기 때문에 학교나 도서관등 대부분의 공공 시설들은 두 타운의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 두 타운을 하나의 타운으로 봐도 별반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이 두 동네를 관통하는 Route 2A 라는 도로가 있습니다. 청교도들이 영국에서 플리마우스(Plymouth)에 도착한 후 그 후예들이 닦아 놓은 역마차 도로인데 그 옛 도로의 형태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 위에 아스팔트만 입혀놓은 유서가 깊은 도로입니다. 그 도로는 영국에서 온 대 설교자 조오지 휘필드(George Whitfield)가 1700년 중반 역마차를 타고 복음을 전하러 다녔던 길입니다. 조오지 휘필드는 당시 요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와 함께 그의 설교를 통해 미국의 영적 대각성 운동을 일으키는데 일조를 한 인물입니다. 그 도로를 따라 30분 정도 더 가게되면 Newbury Port 라는 바닷가를 끼고있는 타운

어둠 속의 한줄기 빛, 격려

한마디의 격려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서게 만들며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목회학 석사를 공부할 때 첫 설교학 과목을 들을 때였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의 설교학 클래스는 언제나 마지막에 설교 노트를 보지 않고 학생들과 교수님 앞에서 설교 한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저에게는 영어로 설교 노트를 보지 않고 설교하는 일이 여간 힘든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클라스에서 강의를 듣던 다른 유일한 동양인 이었던 한국에서 온 한 유학생 전도사님과 저는 나름대로 열심히 설교 준비를 했습니다. 학생들이 설교를 할 때면 비디오 테이프로 녹화를 하는데 그 녹화 중간 중간에 교수님은 잘된 부분과 잘못된 부분을 코멘트를 합니다. 나중 학생이 교수님의 코멘트가 담긴 자신의 설교 비디오를 보면서 자신의 설교를 점검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설교가 끝이 나면 설교에 대한 평가를 학생들로 하여금 하게 만들고 마지막으로 교수님이 설교에 대한 최종 평가를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 클래스는 해든 로빈슨 (Haddon W. Robinson)이라는 교수님이 가르쳤었는데 그분이 저의 설교에 대한 평가의 첫마디가 이것이었습니다. "설교의 예화가 너무 부정적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화를 사용할 때 저와 다른 한국 학생 모두가 다 부정적인 예화를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교수님 자신은

말씀의 문제인가 마음의 문제인가?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누가복음 11:34, 35).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빛과 등불로 비유합니다 (시편 119:105; 누가복음 8:16). 그런데 이 누거복음 11장의 말씀은 등불은 우리 자신의 마음으로 비유합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을 밝혀주는 등불이 있는데 그 등불은 우리의 (마음의) 눈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34절의 “네 눈이 성하면”에서 “성하면” 이라는 말은 헬라어 형용사로서 (“ἁπλοῦς /haplous”) “하나로 겹치는” 혹은 “하나”라는 뜻이고 상징적인 뜻은 “선명한”(clear)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네눈이 성하면” 이라는 말은 여러개가 겹쳐서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한개로 보이는 시력을 말하며 그러므로 선명하게 볼수 있다는 말로 이해하는 것이 본문의 의미를 좀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이런 말입니다. “만일 우리가 사물을 볼때 두, 세개로 겹쳐 보이지 않고 한개로 선명하게(clear) 볼 수 있다면 온 몸이 밝은 것이다”는 말입니다. 즉 사리를 올바로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만일 (네 눈이)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나쁘면” 이라는 말의 헬라어는 형용사로서 (πονηρός /poneros) “악”(evil) 이

사순절

2016년 사순절은 2월 10일 (수)인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 ‘부터 시작됩니다. 이날 부터 부활절 전날까지 주일을 뺀 40일을 사순절이라고합니다. 올해 부활주일은 3월 마지막주인 3월 27일 입니다. ‘재의수요일’은 사순절의 첫날로 이날 참회자의 머리위에 재를 뿌린 관습에서 부터 유래되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재는 인간의 보잘것 없는 본질에 대해 말합니다. 인간은 흙(재)로 부터 만들어진 존재라고 성경은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구약에서 회개를 할때 재를 머리에 뒤집어 썼습니다. 그러므로 재를 뿌린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간의 보잘것 없음을 기억한다는 말이요 동시에 우리 자신을 뒤돌아보며 회개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사순절은 회개로 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사순절은 대속 사역을 이루시기 위해 그리스도가 겪으신 고난과 부활을 기억하기 위한 것으로, 부활절 전 40일간의 경건하게 지내는 기간을 말합니다. 40이란 수는 예수님께서 40일동안 광야에서 시험받으심, 40일간 시내산에서의 모세의 금식, 이스라엘의 40년간의 광야 생활, 예수님의 부활에서 승천까지의 40일 등과 같이 성경에 여러 번 고난과 갱신의 상징적 기간으로 등장합니다. 이에 고난 주간을 포함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인의 구속을 위해 수난을 당하신 사건에 담긴 구속사적 의의를 살펴보며 자신의 신앙을 재 각성하고자 비교적 긴 40일간의 기간을 경

오바마의 연설과 말의 힘

지난 2011년 1월 8일 토요일, 미국 아리조나 투산에서는 미국을 충격에 빠트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미국 현역 하원 의원이 한 수퍼마켓 앞에서 시민들과 만남을 가지던 중 한 청년에 의해 표적이되어 총격을 당한 사건입니다. 이 일로 인해 개비 길포드 하원의원의 중상당한 것을 포함한 14명이 총상을 입었으며 6명이 숨졌습니다. 특히 이 죽음에는개비 길포드 하원 의원을 만나러 간 9살난 여자아이도 있었습니다. 몇일 후 12일, 이 총격사건으로 숨진 6명의 희생자를 기리는 추도식은 14,000여 명의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아리조나 대학교에서 엄숙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슬픔 가운데 시작된 추도식에서 재닛 나틀리타노 국토안보부 장관이 단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가 읽기 시작한 것은 조사가 아니라 이사야서 말씀이었습니다. 이어서 추도사 순서를 맡은 에릭 홀더 법무장관도 단에 서더니 성경말씀을 읽어내려갔습니다. 슬픔에 덮혀있었던 추도식장위에 놀라운 하나님의 위로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오바마 대통령이 단에 올랐습니다. “나는 오늘 저녁 모든 미국인들처럼 당신들과 함께 무릎꿇고 기도하기 위해서 왔으며 내일 당신들 곁에 함께 있기 위해 왔습니다…”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도 연설 초두에 시편 46:4,5절 말씀을 읽었습니다.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하나님이 그 성 중에

부흥의 여정

지난 2007년은 한국에서 1907년에 일어난 “평양 대부흥” 100주년 되는 때이었습니다. 그래서 2007년을 맞이하는 당시 한국 교회는 이 땅에 다시한번 100년전의 부흥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들떠있었고 세미나와 부흥회들을 준비하고 개최했었습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가 기대하고 생각하는 부흥은 한국땅에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한국 교회가 생각했던 부흥이 과연 성경이 말하는 순수한 부흥이었을까?를 일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생각해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부흥을 의식적이든지 무의식적이든지 세상의 가치와 연관해서 생각하는 경향이있습니다. 하나의 예로 이런 것입니다. 즉 부흥은 “숫자가 많아 지는 것이다” 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래서 열심을 내어서 교회에 성도의 숫자가 많아지면 ‘부흥했다’고 자찬을 하고 자기 만족에 빠집니다. 그러나 “부흥의 여정” 이라는 책은 이러한 부흥에 대한 우리의 생각들을 다시한번 재고하게 만듭니다. 이책은 한국 교회가 100년 평양 대부흥을 2007년에 다시한번 이 땅에 이루어 지기를 기대하던 1년 전 2006년 4월에 초판 발행이 되었습니다. 이 책은 저자 김우현 PD가 부흥에 대한 타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영국 아일랜드, 미국, 북한을 비롯한 중국까지 방문하며 여러사람들을 만나고 거기에 대한 여러가지 책들과 자료들의 검토를 통해 발견한 부흥에 대한 역사적 발자취를 담은 책이며 이에대한

출애굽 사건에서 지나치지 말아야할 영적인 교훈

출애굽기 12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가축들이 애굽을 떠났는가에 대해 설명합니다. 어른 남자만 60만명 이었습니다 (37절). 어린아이들과 여자를 다 합한다면 이 수의 서너배는 더 될 것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38절에 “중다한 잡족”이 함께 출애굽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43-49절을 보면 출애굽을 기념하여 지키는 절기인 유월절과 이를 이어서 일주일 동안 지키는 무교절도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다른 민족들도 할례를 받으면 (하나님의백성으로 개종하면) 이스라엘 백성과 똑같이 지킬 수 있게 했습니다. 결국 출애굽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해방과 구원을 가져다준 사건일뿐만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속할 수 있는 기회를 허용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49절에 “본토인에게나 너희중에 우거한 이방인에게나 이 법이 동일하니라” 고 말씀합니다. 다시말하자면 죄와 사망과 사단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심에 대해 보여주는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 말씀하고자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은 처음부터 이방민족을 포함한 것이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은 모든 민족의 구원과 연관이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세상을 심판하시는날 새 예루살렘성이 하늘로 부터 내려오고 (요한계시록 21:2)

예수님의 얼굴 씻어드리기

존 스타트 (John Stott)는 그의 글 "비교할 수 없는 그리스도"에서 말하기를 현대 선교에 있어서 "우리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할 때 먼저 해야 할 일은 예수님의 얼굴에 묻어있는 흙먼지를 씻어주는 일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거부하는 것은 진정한 그리스도가 아니라 사이비 그리스도이기 때문" 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예수님의 참 모습을 보게된다면 예수님을 거부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은 예수님을 참모습을 바로 보고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얼굴에 묻어있는 흙먼지를 보고 예수님을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부정부패 정권과 타협한다면 예수님의 얼굴에 흙먼지를 묻히게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독교를 불의한 종교로 생각해서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영국이 인도를 정복할 때 선교사들도 같이 인도에 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은 선교사들과 정복자들과 동일시 생각하게 되었고 이는 인도에서의 선교가 빠르게 진행되지 못한 이유중 하나입니다. 또한 한 나라를 통치하는 정권의 무신론적인 선전에 의해서 예수님의 얼굴에 흙먼지가 묻어져 왔습니다. 공산권에 속한 나라 같이 기독교를 배척하는 국가나 정권은 기독교는 잘못된 종교라고 가르쳐왔습니다. 그들의 거짓 선전에 의해서 예수님의 얼굴에는 흙먼지가 묻게 되었고 사람들은 예수님의 참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눈물이 나도록 사십시오

29 세의 갓 결혼한 ‘브리트니 메이나드 (Brittany Maynard)’ 는 2014년 11월1일 존엄사를 택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브리트니는 결혼 직후 극심한 두통으로 혼절하면서 자신이 뇌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욱 기막힌 것은 이미 말기상태로 남은 생이 일년을 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선고였습니다. 그래서 브리트니는 남편과 상의 후 존엄사를 결정했습니다. 병원 침대에서 고통스럽고 비참한 몰골로 생명보조장치에 의지한 채 서서히 죽음을 기다리느니, 가족과 친지들 모두의 축복과 위로속에 따듯하고 편안한 곳에서 고통이 찾아오기 전에 미리 눈을 감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브리트니의 결정이 옳은 결정이었을까요? 성경은 죽음을 결정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속한 하나님의 권한이지 사람의 권한이 아니다고 말합니다 (욥기14:5). 더우기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피 값을 주고 산 하나님의 소유라고 말씀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속에 거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내 몸은 이제 내가 마음대로 할수 있는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 목숨을 끊던지 아니면 연장시키던지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할 권리가 있다는 말입니다. 오직 우리가 우리 몸을 가지고 해야할 것은 우리 몸을 우리 마음대로 사용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데 써야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6:19, 2

새로운 가족의 탄생

성경은 교회를 "가족관계 같은 것"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집 같은 것이다"라는 말을 사용하여 비유적으로 말하지 않고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다"라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딤전 3:15). 교회는 “가족관계 같은 것” 아니라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찿으러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육신의 형제가 보낸 사람에게 ”내 모친과 동생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막 3:34-35) 고 말씀하심으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안에서 새로운 가족이 탄생하게 될것을 예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새로운 영적인 가족 탄생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시기 시기 전, 십자가 밑에는 에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다른 두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인 요한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요한에게 자신의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합니다. 그리고 마리아에게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라고 말씀하셨고 요한에게는 “보라, 네 어머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셔서 새로운 가족을 형성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에게는 육신의 형제들이 있었습니다. 야고보, 요셉 시몬 그리고 유다가 있었고 누이들도 있었습니다 (마 13:55-56). 그런데 이들에게 마리아를 맡기지 아니하고 왜 피 한방울 썩이지 아니한 요한에게 마리아를 맡깁니까? 요한은

늙지말고 읽어가라

이제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해와 더불어 우리는 나이를 한살더 먹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삶에 대해 많은 것을 겪었고 경험했음으로 삶에 대해 좀더 넓은 안목이 생기고, 삶에 무게가 더해지며, 삶이 좀더 깊어진다는 말일 것입니다. “논어” 위정편(爲政篇)에 공자는 말년에 다음과 같이 자신의 삶을 회고 하였다고 합니다. 15세에 知于學(지우학) 즉, 학문에 뜻을 두게 되었고, 30세에는 而立(이립) 즉, 스스로 뜻을 확실하게 세울 수 있게 되었고, 40세에는 不惑(불혹) 즉,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 일에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50세에는 知天命(지천명) 즉, 하늘의 뜻을 알게 되었으며, 60세에는 耳順(이순)의 경지에 도달하였으니, 인생에 경륜이 쌓이고 사려와 판단이 성숙하여 무슨일이라도 순순히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70세에는 從心所欲 不踰矩(종심소욕 불유구)라고 했는데 이는 경지에 도달하였다 즉, 70이 되니 무엇이든 뜻대로 행하여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성숙한 인격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성숙한 인격을 이루어가는 법은 세상의 방법과 다릅니다. 베드로후서 3:18에서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라고 말씀하셨듯이 그리스도인의 성숙은 하나님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더 많이

그리스도인과 책임

“어떻게 배울 것인가”라는 책을 보면 “책임”에대해 깊이 생각해볼만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미국 해병대에는 장비공이 있다고 합니다. 다른 해병대원들이 쓴 낙하산을 다시 쓸 수 있도록 재조립해서 정비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입니다. 그런데 이들도 다른 전투하는 해병대원들과 같이 한달에 한번씩 낙하산을 타고 낙하는 하게되어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낙하를 할때 자신이 자신을 위해서 꼼꼼하게 정비한 낙하산을 타고 낙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포함한 다른 장비공들이 정비를 해놓은 낙하산중 무작위로 선택해서 그것을 메고 비행기에서 뛰어 내리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낙하산 장비공들이 어떻게 낙하산 정비를 아무렇게나 할수 있겠습니까? 자신이 정비한 낙하산을 자신이 메고 낙하를 할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 군대도 다리와 수로를 안전하게 건설하게 하기 위해서 비슷한 방법을 썻다고 합니다. 다리나 아치를 설계한 사람은 그것이 완성된후, 다리나 아치를 세울동안 임시로 받쳐놓은 비계를 제거할 때 자신은 그 다리나 아치 밑에 서 있어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찌 대충대충 설계를 하고 다리나 아치를 만들수 있었겠습니까? “백인 대장의 원칙”(The Centurion Principle)아란 책을 쓴 “제프 오리어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매일 당신이 한 일에 서명하라.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새 직업을 찾아라”.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에서 5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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